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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오늘처럼 하느님이 필요한 날은 없었다 본문

雜食性 人間

오늘처럼 하느님이 필요한 날은 없었다

하나 뿐인 마음 2021. 10. 13. 15:16

프란치스코 교황 지음. 진슬기 옮김. 가톨릭출판사.

제목에 끌려 꼭 읽어봐야지 했던 책이다. 물론 제목에서 끝나지 않고 그 내용에도 끌렸다. 교회 역사 안에서 부끄럽지 않은 시대도 없었겠지만 현시대처럼 교회 내 중심세력에 죄가 만연하고 부끄러운 정도가 아니라 비난 받아 마땅한 범죄를 저질러 참회하고 죄를 기워갚아야 하는 시대가 또 있을까 싶다. 더불어 전 세계가 코로나를 겪으며 수 개월간 성사가 중단되고 성삼일 전례마저도 교황님 혼자서 집전해야 했던 시대 역시 앞으로 또 있을까. 그리고 이런 시대에 교회의 수장으로서, 하느님의 종들의 종으로서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교황님은 여러모로(물론 불만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존경받을 만한 분이시다.

이렇게 쉽게, 이렇게 가까이,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교황님의 글을 접할 순 있다는 건 분명 서로에게 은총이다. 무엇보다 은총은, 누리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이 책을 읽어 봅시다.


p.23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의무를 소홀히 한 죄인 ‘태만’도 이에 해당됩니다. 다시 말해, 선행을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것도 죄입니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이렇게 말하며 스스로 괜찮다고 여깁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나쁜 짓은 하지 않았어.” 하지만 실제로는 이웃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좋은 증거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받아들여 선을 행해야 합니다."

p.30
"요새 우리는 잘못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과 훈계를 미덕으로 여기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여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곧, ‘나는 나 자신을 꾸짖는가? 아니면 남들을 비난하는가?’하고 말입니다. 남들을 비난하며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추상같이 비판하면서, 저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거죠."

p.31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는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특징은 남들을 비난하고 험담하며 타인의 삶에 도끼눈을 치켜뜨는 것이 습관이 될 때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고약한 징후 가운데 하나죠. 이에 ‘내가 이런 짓을 했던가?’라는 물음은 마음 깊이 다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좋은 질문이 될 겁니다."

p.32
"모든 죄의 고백과 고발 그리고 비판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남의 허물을 완성으로 이끌어 주고자 하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우리가 체험하는 것은 죄의 고발로 끝이 나는 게 아니라, 그 죄를 사랑으로 치유받는 것이니까요. "

p.40
"잠시만 멈추어 보세요. 그리고 이러저러한 동요나 흥분을 잠시 내버려 두십시오. 이런 것들은 그저 의미 없이 휘몰아치며 영혼을 불쾌함으로 채울 뿐이니까요. 우리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씁쓸함만을 느끼게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멈추어 서십시오. 가속화된 방식으로 살기를 강요하는 의무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가족과의 시간은 물론 친구와의 시간, 더불어 조부모와의 시간과 내 선의로 무상으로 내어 주는 시간들, 그리고 결국에는 하느님과의 시간마저 흩어 버리고 쪼개어 없애 버리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여야만 한다는 생각을 잠시만 멈추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것든 진정한 친교의 가치와 집중의 의미를 잊게 하여 ‘진열장 안의 삶’을 지속하게 만들 뿐입니다.
따라서 거만한 시선이나 일시적인 평가, 그리고 친밀감과 연민을 느끼지 못하고 타인을 존중하지 못하는 업신여김 앞에서 잠시만 멈춰 서십시오. 사실 저러한 태도는 자신이 상처받았고, 심지어 죄와 오류에 빠져 있다는 표징입니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좌지우지해야 한다는 강박 앞에서 잠깐 멈추시기 바랍니다. 이는 생명의 선물과 이미 받은 선익들에 대한 무상성을 망각한 데서 오는 것이니까요.
계속해서 우리의 귀를 멍하게 하고, 결국 멀게 만드는 시끄러운 소음 앞에서 잠시 멈추어 봅시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침묵의 창조적이고 풍요로운 힘을 잊게 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무미건조하고 냉담한 감정을 조장하는 태도 앞에서 잠시만 멈추어 서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들은 닫힌 마음과 자기 연민에서 기인한 것으로, 고통과 부담을 나누기 위해 다른 이들과 만나는 것을 꺼리게 만드니까요.
그리고 순간적으로 일시적인 공허함 앞에서 멈춰 서십시오. 이것들은 우리에게서 진정한 자기 실존의 도태와 여러 연결들 그리고 과정이 지니는 가치와 우리가 아직 여정 중에 있음을 잊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잠시만 멈추어 서십시오. 실피고 좀 더 숙고할 수 있도록 멈추어 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라보십시오. 신앙과 희망의 불꽃을 살아 있게 하는 애덕과 사랑을 지속하는 여러 표징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애로움은 모든 것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p.40
"멈추어 서십시오. 가속화된 방식으로 살기를 강요하는 의무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p.55
"거룩함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젊음의 비약’인 셈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새로워진 젊음’입니다."

p.77
"동방 박사들은 아기를 찾아낸 뒤 ‘엎드려 그분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그저 바라만 보거나 단순히 상황에 맞는 기도만 되뇐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아기를 찾았다고 확인한 뒤 그냥 돌아간 것이 아니라 경배를 드렸습니다."

p.77
"우리는 동방 박사들에게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 자투리 시간이나 가끔 몇몇 생각만을 내어 드린다면, 우리는 결코 그분의 빛을 가질 수 없을 거라는 점을 말입니다."

p.81
"우상 숭배는 단순히 이교도의 거짓된 신을 숭배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믿음과 신앙에 대한 끊임없는 유혹 가운데 하나죠. 우상 숭배란 그 어떤 것이든 하느님이 아닌 것을 절대적으로 신성시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가장 비참한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상을 숭배하는 관점으로 살아가면서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결과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자기 파괴적인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p.95
"어느 정도 믿음이 있더라도 유혹을 받은 이들은 이러한 태도를 취합니다. 알지만 행하지 않는 것, 곧 이미 알고 있는 것들로 신앙을 말하지만, 정작 주님을 위해 개인적으로 엮어기는 싫은 셈이죠. 말은 하지만 기도하지는 않는 겁니다. 안 좋은 일에 대해 불평만 할 뿐, 좋은 일은 하지 않는 거죠."

p.103
"신앙의 삶은 주님과 함께 머물고 싶다는 바람 속에 있습니다. 하여 계속해서 그분이 어디에 머무르시는지를 찾을 수밖에 없죠. 이것은 우리가 습관적으로 나태한 종교성을 극복하도록 부르심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기도를 드리고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며 성사에 참여함으로써 예수님과 만나며 습관적이고 나태한 종교성을 치워 없애야 합니다. 그분과 함께 마물고, 그분의 도움과 은총에 감사하며, 열매를 맺기 위해서 말입니다. 예수님을 찾고, 그분을 만나서 따르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의 여정입니다."

p.153
"누군가 우리에게 진심으로 이야기를 건넬 때 우리의 외로움은 끝나게 됩니다."

p.156
"우리는 노예근성과 어린아이 마음가짐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주인님의 명령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말씀인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겁니다."

p.157
"우리는 주님의 계명 앞에서 솔직해져야 합니다. 인간의 자유를 운운하기 전에, 하느님의 말씀을 단순히 명령으로만 받아들인다는 그 자체가 어쩌면 마음이 떠나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p.166 ~ p.167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삶의 풍파를 겪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신앙은 우리에게 그분 현존의 확신을 줍니다. 믿음은 문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그분 현존의 확신을 줍니다. 신앙은 우리에게 실존적인 폭풍우를 이겨 내도록 힘을 주시는 예수님의 현존을 깨닫게 하죠. 다시 말해 온갖 어려움에 직면한 우리를 돕기 위해 붙잡아 주시고, 어두운 순간에도 길을 가리켜 주시는 그분의 확실한 손길을 깨닫게 합니다. 신앙 곧 믿음이란 결코 삶의 문제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삶의 여정을 지속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거죠."

p.170 ~ p.171
"“그건 내 알 바 아니야.”라고 말하는 무관심과 공동선을 업신여기는 시민들의 무례함, 다른 거소가 낯선 것들에 대한 공포, 명백한 범죄임에도 예전부터 그랬다며 넘어가는 관례 인습주의, 아울러 남들의 행위는 비난하면서도 자신도 똑같은 짓을 행하는 위선과 윤리적 생태적 차원에서의 퇴보를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는 무기력함, 그리고 많은 사람에 대한 착취."

p.178
"그분의 작아지심이 우리의 교만을 깨뜨리도록, 그분의 가난이 우리의 사치를 막아서도록, 그분의 상냥함이 우리의 무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말입니다."

p.228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낄 때 감사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부끄러움이란 우리가 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며, 이것은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움이란 악을 이기기 위해 주님을 필요로 하는, 일종의 영혼으로부터 받는 비밀스러운 초대이니까요. 우리가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문제입니다."

p.255
"모욕과 냉대 없는 참된 겸손은 없습니다. 만약 그대가 냉대를 받아들이고 모욕을 자신의 어깨에 짊어질 수 없다면, 그대는 겸손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척하고 있는 것일 뿐, 정말 겸손한 건 아니죠."

p.315
"우리는 마음과 생각을 열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우리를 만나기 위해 오시는 하느님의 실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믿음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부족은 하느님 은총의 장애물입니다. 그런데 세례받은 많은 사람이 정작 그리스도가 안 계신 것처럼 살아갑니다. 이들은 신앙 행위와 표지를 반복하기는 하지만,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일치하지 않고, 그분 복음에 대해 실제로 헌신하지 않죠. 우리 각자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근본적인 소속감을 보다 깊게 가지라고 부르심받았습니다. 늘 사랑과 애덕이 그 기준이 되는 일관된 삶의 방식으로 이를 증거하도록 애쓰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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