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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가난한 자들만의 예수인가 본문

vita contemplativa

가난한 자들만의 예수인가

하나 뿐인 마음 2013. 10. 12. 09:07

 

 

오른손잡이인 나는 힘을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가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힘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서 나의 몸도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조금 틀어져 있다. 이런 사정이니 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가끔은, 과하게 왼편에 힘을 가해야 한다. 힘을 가하는 순간만 보게 되면 내가 왼손잡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균형을 맞추고 싶을 따름이다. 왼편에 과도하게 힘을 부여하는 이유는 내가 오른손잡이어서라기 보다는 그로 인해 한쪽으로 틀어진 혹은 기울어진 내 몸에 균형을 부여하기 위해서이다.

 

김근수 선생님의 슬픈예수를 읽고 있다. 이 책만 본다면, (사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책 전체를 논할 수 없는 입장이긴 하다.) 아니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하면서 혹은 작금의 나라 형편을 생각하면 더더욱 예수는 마치 가난한 자들만의 예수(여야 한다?)처럼 보일 수도 있다. 억압받는 자들만의 예수, 연약하고 아픈 자들만의 예수...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저자의 의견은 나로선 온전히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만의 예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의 힘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들 편에 서서 균형을 맞추시는 것이다. 부자 청년에게도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하게 되어라 하시지 않고 나를 따라라하시지 않았는가 말이다. 요즘 교황님 덕분에 가톨릭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긴 하지만 마치 교황님을 권력의 수장쯤으로, 어느 한쪽만의 교황인 것처럼, 반대 진영의 사람들을 무찔러줄? 혁명가쯤으로 생각하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마음에 걸리는 건 사실이다.

 

균형을 맞추고 계시는 예수를 기억하며 이 책을 읽고 싶다. 오른쪽을 위해서, 왼쪽을 위해서 힘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균형, 우리를 위한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예수님도 있는자와 없는자의 균형을 맞추어 구원하려는 의지를 실천하시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을 편드시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위해 약한 편에 서 계시는 것. 예수님은 있는자에게도 없는자에게도 아버지 하느님을 드러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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