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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안전하다는 곳에 서 있었잖아요? 본문
좀 버겁다 싶은 날들이 반복되다가 결국 꽉 찼다 싶을 때 숨통 트이는 선물이 도착한다, 희안하게도. 수녀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재밌는 이야기를 멀리 캄보디아에서 들려주는 친구 수녀의 연락. 소소하면서 정성 가득한 사람들과의 만남. 그러다보니 오늘 아침에 비몽사몽 확인했던 메일 내용이 생각났다.
내가 예전에 소임을 했던 성당에 있는 수녀님으로부터 온 메일. 초등학교 때 왕따였던 자신에게 힘이 되어주었다며 나를 찾더라는 이야기, 초등학생이었던 그 아이는 어느새 고2가 되어 있단다. 반갑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한 이 소식과 함께 생각나는 또 다른 이야기 하나. 그래, 나를 조금 다른 방향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들었던 그 질문 말이다.
Y는 왕따였던 모습, 염려되고 짠한 마음만으로 내 기억에 남은 건 아니다. 어느 날 늘 마음이 쓰이던 Y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가뜩이나 눈도 나쁘고 몸도 썩 건강한 편이 아닌 초등학생 Y가 교통사고라니... 마음이 너무 아프고 안타까워 찾아간 병원에서 어색하게 날 맞이하던 Y. 말도 행동도 조금 굼뜨던 아이였는지라 미처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했거나 시력이 좋지 않아 달려오는 차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거나 했다. 하지만 Y의 교통사고는 어린이 보호구역을 과속으로 달리던 차가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던 Y를 인도까지 올라가 다치게 한 사고였다. 횡단보도 앞 인도에 서서 파란 신호등을 기다리던 Y는 가만히 서서 교통사고를 당한 거였다.
다리를 다친 Y는 병원에 꼼짝도 못하고 누워 낫기를 기다리며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평소엔 멀리서도 달려와 나에게 안기던 Y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병원까지 찾아간 나를 그다지 반기지도 않았고 내내 어색하게 나를 쳐다보기만 했었다. 아파서려니 하며 기도해주고 이런 저런 말을 붙이던 내게 갑자기 Y는 이런 질문을 했었다.
"안전하다는 곳에 서 있었잖아요?"
믿었던 어른에게 씻어내기 힘든 배신감을 느낀 아이가 던지는 질문이었다. 그때 나는 수녀원에 들어간지 9년째에 접어드는 유기서원 수녀였고, 내가 세상에 속한 사람이 되기 보다는 속세를 벗어나는 것에 더 기울어져 있던 때였다. 세상의 부조리에 저항하고 하느님 뜻이 온 세상에 미치기를 원하기보다는, 내가 세상에서 멀어지기를 바랬고 그저 내 눈앞의 세상이 하느님 뜻에 부합하기를 먼저 구하는 것으로 만족하던 때였다. 그렇게 시끄럽던 2009년 대통령 선거가 지긋지긋해져 눈감고 관심을 끊었으며 뉴스보다는 영성서적과 성경 공부에 더 몰두하던 때. 서둘러 속세를 떠나 수녀가 되길 원하던 그때의 나를 돌려세웠던 질문.
"안전하다는 곳에 서 있었잖아요?"
하지만 그 질문에 미처 답하지 못한 채 용산 참사가 일어났고 난 종신서원을 위해 서둘러 본원으로 들어갔다. 미처 뚜껑을 닫지 못하고 주머니에 넣어둔 볼펜에서 잉크가 흘러나와 내 옷을 적시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처럼 시간은 소리없이 흘러갔다. 그동안 종신토록 수녀가 되기 위한 1년 간의 대수련이 시작되었는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노 전 대통령이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부엉이 바위에서 홀로 떨어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하느님께 매달리며 나는 나를 비워내는 데에 몰두했었다. 그리고 다시 나온 세상. 입회하던 날 내가 통과했던 수녀원 대문이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에 들어서는 문이 아니라, 내 좁은 세상에서 더 큰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었다는 걸 그제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라 비로소 세상으로 나온 것이라는 걸, 나는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었다는 사실을.
"안전하다는 곳에 서 있었잖아요?"
희미해질만 하면 다시 떠오르는 Y의 질문. 안전한 곳에 서 있으라는 말에 마음 놓고 서 있었던 유현이에게 자동차가 달려왔던 것처럼 이 세상은, 지금의 우리 나라는 안전한 곳에 마음 놓고 서 있던 선량한 사람들에게 세상이 덮쳐온다. 가만히 있으라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말에 순순히 가만히 있었던 300여 명의 목숨이 그대로 바다에 빠져 되돌릴 새도 없이 생을 마감했다. '선'이 '약'으로 인식되는 세상, '재물'이 '힘'이 되고 '악'이 '법'을 주무르고 '가난'이 '죄'로 인식되고 '권력'이 '법'으로 돌변하는 세상이 더 이상 평화롭게 유지되지 않도록... 나는 타협하지 않고 걸어갈란다. 어른들을 믿고 따른 아이들이 되돌려 받는 것이 '배신'이 아닌 세상. 안전한 곳에 서 있으면 안전한 것이 당연한 세상이 지극히 정상적인 하느님 나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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