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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도희야 본문

엿보다

도희야

하나 뿐인 마음 2014. 7. 10. 03:22


손톱이 자라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손가락 끝을 다쳐서 오랫동안 새 살이 돋아나길 기다리던 시기. 내 왼손 손가락의 손톱들은 하나같이 성장을 멈추었었다. 겉으로 상처가 아무는 데에만 거의 반 년이 걸렸었다. 다친 손가락에 모든 영양분을 몰아주느라 더 이상 자라기를 거부하던 손톱. 6개월 정도가 지나니 다친 손가락의 손톱만 자라지 않았지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경이로운 시간이었다.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 손가락들은 기특하게 서로를 도와주고 있었고 다친 하나를 살려내기 위해 성장을 거부하고 기꺼이 희생하고 있었다. 되돌아보면, 그때는 눈으로 보이는 외적 성장을 멈추었는진 몰라도 그 어느 때보다 내적으로 깊이 자라났을 시기이다. 연대의 책임이 당연했던 것이다. 그게 자연스럽고 옳은 일이었다는 판단이었을 것이고. 


영화를 보다가 손가락을 다치고 치료하던 그 때가 생각이 났다. 도희가 마치 손가락 같았는데, 내 손가락보다 못한 사람들이 도희를 둘러싸고 있었다. 다친 손가락이 나머지 손가락들의 책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거부한 채 모든 영양분을 스스로 내어놓았다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 몸의 장기들은 다친 한 부분을 보며 스스로의 책임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수많은 인간들은 그 책임감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다. 도희는 주위 사람 모두가 키워낸 것이다. 죄악도, 다시 끄집어내야 하는 선함 역시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 각자가 외면하고 책임을 거부하고 외면하면서 거대한 괴물을 키워내고 있다. 


내가 외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둘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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