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깊이에의 강요

작은 새 본문

하루하루 부르심따라

작은 새

하나 뿐인 마음 2014. 6. 24. 10:01


수도원처럼 지어진 피정의 집이었어요. 가꾸어지진 않았지만 소박한 중정이 있었고 식당을 가든 강의실을 가든 성당을 가든 중정을 혹은 중심을, 내 마음 한가운데를 볼 수 있었지요. 도서관에 앉아 밖을 보다가 중정에서 한가로워 보이는 아주 작은 새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햇빛 좋은 날 한가롭게 노니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묵주기도와 미사, 저녁까지 먹었는데도 여전히 중정에 있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중정으로 나가보니 때마침 벽을 타고 오르다가 결국 얼마 못가 다시 떨어져 내리는 걸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는지 한 번 올라갔다 떨어져 내리면 한동안은 꼴딱꼴딱 숨을 몰아쉬고 있었어요.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작은 새가 무서워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게다가 저는 아무리 작은 새라고 해도, 조류는 평화의 상징 비둘기까지도 두려워하는 사람이니까요. 조심스럽게 작은새 가까이 다가가는 데에만 1분 넘게 주저했는데, 다가서서도 선뜻 조치를 취하지 못했습니다. 



조약돌보다 조금 더 큰 새였습니다. 단순히 아기새가 아니라 본래도 작고 가녀린 종류일까요. 당황한 데다가 숨도 차고 두렵기도 해서 도망갈 생각도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도망갈 생각도 못하고 숨만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혼자 주절주절 말을 붙였습니다. "쭈쭈쭈"부터 시작해서 "겁먹지 마.", "살려줄게." 등등. 한참을 어르고 달랬지만 정작 중요한 건 어떻게 도와줘야할지 모른다는 거였습니다. 내 손으로는 도저히 그 새를, 아무리 가녀린 작은 새라고 해도 직접 만질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저런 말만 늘어놓다가 생각난 것이 모자! 뜨거운 캘리포니아 동네에 비해 보스톤 저녁바람이 찰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들고 온, 모자까지 달린 잠바인데 생각보다 날씨가 너무 따뜻해 짐에 불과하다 여겼다가 ... 다른 이유가 있었더군요. 살다보면 가끔은 제가 알 수 없는 또다른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곤 하지요.



동그랗게 입구를 말아서 마치 그물처럼 만든 후에 또 주저했습니다. 자신을 잡으려는 그물망처럼 보이니 얼마나 무섭고 두려울까... 물론 저도 겁이 났습니다. 작은 새라지만 겁이 나서 정신 못차리고 푸드덕 날아서 나에게라도 덮쳐오면 어쩌나... 사람이 참 간사하지요. 손가락만한 참새 한 마리를 구해주겠다고 혼자 난리를 치다가 결국 겁이 나서 또 망설이는 꼴이라니. 다행하게도 너무 지친 아기새는 잠시 도망을 치긴 했지만 결국 제 손을 거치지 않고서도 순순히 모자 속으로 들어가줬습니다. 잠시 파닥거리긴 했지만 외부 정원으로 나가는 길은 복도 하나 폭이니, 피정이라해도 후다닥 뛰었습니다. 혹시나 아스팔트 위에 실수로라도 넘어지면 안되니 앞마당 정원 잔디까지 뛰었지요. 그리곤 조심스럽게 모자를 바닥에 놓고 입구를 열었습니다. 살았는지도 모르고 얼른 날아가지도 못하고 저렇게 사진을 찍을 때까지도 가만히 있었습니다. 놀라기도 했을테고 어리벙벙했겠지요, 평소의 저처럼^^ 그러다 얼마 후에 조용히 날아갔습니다. 잠시 잔디에 내려앉았다가 나무 위에까지 날아가 가지 위에 앉아서 숨을 고르는 게 보였습니다. 남들 보면 별것 아닌 일일테지만, 전 새 한마리 살렸다는 뿌듯함에 혼자 잠시 으쓱 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피정집 한가운데 놓여진 중정이 누구에게는 두려움의 갇힌 공간이 될 수도 있고, 구해주려는 모자가 올가미처럼 여겨질 수도 있고, 남을 도우려는 친절에도 두려움이 따르고 용기가 필요한 게 사는 일인가 봅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여전히 우리는 모든 것이 지나가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섭리'를 알아차리기 어렵지요. 주님, 당신이 보시기에 저도 저 작은새마냥 두려워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요.

'하루하루 부르심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다보면 가끔 이렇게  (0) 2014.07.08
피정을 다녀와  (0) 2014.07.01
우리가 건너간 시간  (0) 2014.06.19
2014. 6. 3.  (0) 2014.06.04
2014.5.16.  (0) 2014.05.17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