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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르 5,21-43 하느님의 깨우침을 받은 자, 야이로 (나해 연중 제13주일 레지오 훈화) 본문

마르코의 우물/마르코 5장

마르 5,21-43 하느님의 깨우침을 받은 자, 야이로 (나해 연중 제13주일 레지오 훈화)

하나 뿐인 마음 2024. 6. 25. 13:06

 
  이번 주 복음에는 여러 사람들이 나옵니다.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다가 낫게 된 여인도 나오고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일어난 회당장 야이로의 어린 딸 열두 살 소녀도 나옵니다. 이밖에도 예수님, 군중과 제자들, 회당장 집 사람들,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나옵니다. 이번 주는 이들 중 마지막 사람인 회당장 야이로를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야이로는 이 복음에서 딱 한 번 말을 합니다. 자신이 아니라 딸을 위해 예수님께 간곡히 청하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예수님을 움직이시게 합니다. 성경은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라고 전합니다. 예수님이 회당장의 간청에 움직이셨기에 그 길에서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던 여인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많은 군중 덕에 용기를 내어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거지요. 그 여자 역시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고 예수님은 멈추시고 여인을 찾으십니다. 제자들은 별일 아닌 듯 대답했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여인을 찾고 만나셔서 평안히 돌아가도록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지체되는 동안 회당장은 무엇을 했을까요? 복음에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딸의 치유가 소중했던 야이로이지만 그만큼 간절했던(둘 다 열두 해) 여인의 치유를 위해 묵묵히 기다렸다는 것을. 내 일이 더 급하고 중하다고 외칠 법도 한데 야이로는 침묵 중에 기다립니다. 
 
  다시 집으로 가는 도중, 사람들이 와서 딸이 죽었으니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전합니다. 여태까지 들인 노력과 시간이 허무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때도 야이로는 말이 없습니다. 그랬기에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집에 이르러서는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울며 탄식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때도 야이로는 고요하기만 합니다. 속마음까지 고요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기다립니다. 그리고 곧 어린 딸을 향한 예수님의 “탈리타 쿰!”을 들었고, 아이가 일어서서 걸어 다니는 것도 보게 됩니다.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는 예수님의 거듭되는 분부 말씀에 야이로는 마지막까지 침묵합니다. 
 
  야이로(Ἰάειρος)는 히브리어 야일( יאיר enlightener)을 헬라식으로 바꾼 이름인데 뜻은 ‘하느님의 깨우침을 받은 자’라고 합니다. 조금 길다 싶은 이번 주 복음 장면 안에서 고요하게 자리잡은 야이로를 상상해보면 하느님께서 어떻게 야이로를 깨우치셨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야이로는 자신이 치유받지도 않았고, 죽음에서 일으켜진 것도 아니었지만 하느님의 응답을,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야이로만 이름이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고  모든 사안에 너도나도 의견을 내고 심지어 내 생각만을 주장하는 세상입니다. 먼저 알고 먼저 말하고 전하는 것이 최고의 능력처럼 비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간절하게 기도한 후 침묵 속에서 끝까지 기다린 야이로의 신앙을 묵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예수님이 움직이시도록 간곡하게 기도한 야이로는 자신의 부탁이(기도가) 지체되어도, 사람들의 만류와 절망적인 소식에도, 기도가 이루어진 순간에도 예수님이 행동하시고 말씀하시도록 침묵하며 마지막까지 기다립니다. 이 기다림은 그저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내맡기는 의탁입니다. 이 온전한 의탁은 하혈하는 여인의 구원도, 딸아이의 치유도 이끌어 냅니다. 지금 서둘러 응답받고 싶은 기도가 있다면, 더 온전히 내맡기며 의탁하실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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