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ta contemplativa

흔적을 찾다

하나 뿐인 마음 2013. 2. 4. 16:52



지난 밤 나몰래 내린 눈을 보고 싶은 마음에

아침기도와 묵상, 공동 식사까지 끝내고

방으로 올라가기 전 현관문부터 후다닥 열었더니

열린 문 사이로 코끝 시린 칼바람과 함께

희미한 어젯밤 눈의 흔적이 날 반겼다.

 

펑펑 내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땡새벽도 아닌 시간이라

푹푹 쌓인 눈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겨우 흔적을 남겨놓은 눈을 보면서

밤에 지켜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난 밤새 내린 눈을 직접 보진 못했다.

수녀원에 사는 이상

그 시간에 깨어있기도, 안으로 잠긴 문을 열고 나기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눈이 남겨놓은 흔적으로 눈이 내렸음을 알 수 있다.

 

우린 하느님을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다.

밤새 내린 눈처럼... 짐작은 할 수 있다해도

특별한 은사를 받은 분들을 제외하고는

(난 그분들에 대한 판단은 무조건 하느님께 돌린다!ㅎㅎ)

하느님을 맨눈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하느님이 남겨놓으신 흔적으로 우린 하느님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의 사랑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얼마든지.

 

문제는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는 것.

땡새벽부터 문을 연다면 좀더 많이 쌓인 눈을 보았을테고

내가 문을 여는 시간이 늦어질수록

내가 발견하게 되는 어젯밤 눈의 흔적은 줄어드는 것처럼,

좀더 빨리 마음의 문을 열고 하느님 흔적을 찾을수록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하느님 사랑은 더 크다는 말이다.

 

따듯한 방에 홀로 앉아

왜 내 눈에는 눈이 보이지 않냐는둥

문열기 귀찮아 잔뜩 움츠리고 있으면서

왜 나에겐 눈내리는 정경을 볼 줄 아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냐고

불평 불만하고 있으면

 

영~ 기회가 없다는, 한마디로 말짱 꽝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근데... 그랬다 하더라도...하느님의 사랑은

닫힌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아침햇살처럼

어둔 밤도 은은하게 비추며 내려오는 새하얀 눈발처럼

더 집요할테지만....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