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ta contemplativa

모기장

하나 뿐인 마음 2013. 2. 4. 16:04



기도 특히 묵주기도라고 하면 난 어릴적 모기장이 떠오른다.
여름이 다가오고 낮이 점점 길어질수록 
우리집의, 나의 어린 시절은 평화롭고 행복했다.

선들선들 바람이 불어오고 
멀리선 애들 뛰노는 소리가 들려오고
하늘은 노을로 물들어가고 
정원은 싱그러운 녹색과 색색의 꽃들로 꾸며지고
저녁을 먹은 후의 포만감이 가져다주는 기분좋은 노곤함을 느끼며
난 모기장 안에서 묵주기도를 바치곤 했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잠의 세계로 들어가지 전...
엄마가 사준 분홍색 묵주알을 굴리던 시절.

기도는...묵주기도는 그랬다.
모기장 안에 앉아 묵주알을 굴리노라면
세상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또다른 세상으로 옮겨간 느낌.
시원한 바람은 맞으면서도
귀찮은 벌레들로부터는 보호되는 든든함.

묵주는 그로부터 30년도 더 넘은 지금까지도
어린 시절, 모기장 속으로 나를 데려가곤 한다.

세상 한복판에 서 있으면서도
또다른 차원의 공간에 존재하는 느낌 속으로,
성령의 바람을 느끼며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어쩌지 못하는 순간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