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짐

키티 크라우더 글, 그림. 나선희 옮김. 책빛.
여우와 포도 이야기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나의 이야기이다. (소설 버전으로는 '깊이에의 강요'가 있다.)
나는 잘 돌아선다. 항복도 잘하고 미련도 싹둑 잘라낸다.
하지만 사실은,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고 울어버릴까 봐 먼저 돌아서는 것이고,
지는 것도 어렵고 이기는 건 더 어려워 미리 항복하는 것이고,
구질구질하고 지질해질까 봐 두려워 눈 딱 감고 미련을 싹둑 잘라내는 것이다.
선택에 앞서서도, 선택하고 난 후에도 그것이 진짜 신 포도인지 신 포도이기를 바라는 건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이제는 종종 "나 저거 먹을래!"말하기도 하고, '신 포도일 거야.' 대신 "흥!" 할 줄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이런 그림책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잭이 되어 짐을 따라나선다.
그러나 갈매기들은 검은 새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난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
"그럴 필요 없어."
짐은 친구를 데리고 마을 밖으로 나왔어요.
"계속 그러면 마을에 가지 않으면 돼!"
돌아서 가는 나를 돌려세우는 존재는 얼마나 소중한지.
어린 나에게는 "그럴 필요 없어."라고 말해주는 존재가 간절했었다.
살면서 그런 존재를 많이 만났고, 이제는 내가 나에게 말해주곤 한다.
"그럴 필요 없어, 괜찮아."
"가까운 곳에 전나무 숲이 있는데, 같이 갈래?
잭은 짐에게 숲에 대해 말해 줄 수 있어 기뻤어요.
두 친구는 그렇게 우정을 쌓아 갔어요.
촘촘하게 엮인 내 공간으로 누군가를 들인다는 것이 아직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잭의 초대의 말이 나의 용기 같아서, 살짝 안아주고 싶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숨을 고르고 뱉은 말인지 알 것 같으니까.
그리고 어느 장면에서 불쑥 나타난 노르베르는, 내 삶 어딘가에서부터 숨어든 은총이다. 신의 은총 한 조각 같은 노르베르.
(노르베르는 책으로 만나세요!)
저녁이 되자, 작은 나무 집에 갈매기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어요.
책을 읽어 주는 잭의 목소리는 맑고 아름다웠어요.
갈매기들은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고,
자기도 모르게 이야기를 사랑하게 되었지요."


특히나 마지막 이 장면은 너무 아름다웠지.
떠나온 고향 같기도 하고, 언젠가 도착할 나의 하늘나라 같기도 하고, 때때로 미리 맛보는 천국 같기도 했다.
키티 크라우더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무 좋다.
그러니 꼭 들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