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6,24-35 나 자신으로 그분께 다가가, 믿을 것(나해 연중 제18주일 레지오 훈화)
성경에는 군중이 많이 나오지만 진짜 예수님을 만난 건 개별적인 '자기 자신'일 때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간 '손이 오그라든 사람 한 사람', 집으로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많았을 때 지붕을 뚫고 내려진 '중풍병자 한 사람', 수많은 사람이 밀쳐댔지만 정확히 옷자락을 붙잡았고 군중 틈에서 용기를 내어 예수님 앞에 나선 '하혈하는 여인 한 사람'이 치유를 받습니다. 예수님 가까이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아가야' 하고 '믿어야' 합니다.
이번 주에 나오는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여도, 물 위를 걸어 겁에 질린 제자들에게 다가가 안심을 시켜도 믿음의 담보로 기어이 표징을 요구했고, 생명을 준다고 하니 덜컥 탐이 나서 그 빵을 늘 달라며 보챘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 6,35) 당신께 ‘오라’ 하시고 당신을 ‘믿으라’ 하십니다. 당신께 가야 배고프지 않고 당신을 믿어야 목마르지 않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배를 채우고자(=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가요, 그분께 ‘다가가’ ‘믿으려’ 하는가요.
홀로서지 못한 군중 속의 개인은 개성과 삶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을 잃은 채 무리의 움직임에만 민감할 뿐입니다. 달콤한 정치적 술수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혹시라도 대열에서 낙오할까 두려워 남들이 좋다고 하는 상품은 너도나도 구입하여 유행을 만들어 냅니다. 예수님께 군중은 늘 측은지심의 대상이었지만 군중은 끊임없이 거짓 목자와 정치적 선동에 휘말렸습니다. 빵과 기적을 좇아 구름처럼 몰려왔다가 대사제, 원로들의 선동에 돌변하여 주먹을 불끈 쥐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소리치던 군중처럼 말입니다. 이런 군중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예수님은 사람들이 군중으로 남는 것을 거부합니다.
좋다는 것이 있으면 우르르 몰려가고, 옳지 않은 일이라 해도 내게 이득이 되면 무리에 섞여 양심을 쉽게 저버리고, 타인의 아픔을 지켜주기는커녕 도리어 파헤쳐서 만천하에 드러내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잘못이 있다 싶으면 확인도 하기 전에 힐난하고 모욕을 주는 일에 서슴지 않는 것, 이것이 군중의 속성입니다. 군중 속에 하나로 예수님 가까이는 갈 수 있을지 몰라도 인격적 만남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앞에 함께 나아가되 ‘나 자신’으로 굳건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나 자신의 모습으로, 그분께 ‘다가가’, 그분을 ‘믿기를’ 바라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이 문장에 사람이라는 단어는 복수가 아니라 단수입니다. 유일무이한 나 자신의 모습으로 예수님께 갈 때 그분과의 오롯한 만남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