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2,20-33 하루 아침에 녹음이 우거지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당장... (나해 사순 제5주일 레지오 훈화)
예수님을 뵙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에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고 하시며(이제 요한복음에 나오는 ‘영광’은 십자가까지 포함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동안 몇 번이나 당신의 때를 언급하셨고 마침내 그 때가 왔음을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12,23)는 말씀으로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그전까지는 늘 미래형을 사용하셨는데 여기서는 완료형을 사용하셨습니다. 앞으로 올 사건이 아니라 그 시간이 이미 온 것처럼 말씀하신 것은 십자가에 들어 올려지는 사건이 분명히 이뤄질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더 분명하게 알려주시기 위해 들려주신 이야기는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2,24)
씨앗이 싹이 트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딱딱한 씨앗은 생명을 품고 있긴 하지만 땅에 떨어진 후 어둠 속에서 충분히 썩어 껍질이 벗겨지고 부서져야 싹이 틉니다. 품고 있는 생명이 밖으로 나오려면 썩고 부서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썩고 부서지지 않으면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는 있겠지만, 싹이 트지는 않지요. 그냥 그 밀알 하나로 끝날 뿐입니다. 하지만 썩으면, 죽은 것처럼 보였던 씨앗에서 뿌리가 나오고 싹이 돋고 점점 더 자라서 가지 끝에 밀 이삭이 달리고 가을에는 많은 밀알, 하나가 아니라 많은 밀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밀은 빵이 되어 우리를 먹이고, 미사 때 예수님의 몸으로 변화될 제병이 되기도 하지요. 밀알 하나가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우리는 그 열매의 생명을 나누어 얻게 됩니다. 이 밀알처럼, 예수님께서도 많은 인간들을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기꺼이 십자가 고통의 길을 걸으셨고,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셨기에 우리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밀알처럼 살아가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처럼 십자가를 지고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자만과 교만, 욕심과 고집과 탐욕, 무질서한 애착과 이기적인 자아에서 죽고 많은 열매를 맺기를 바라십니다. 죽어야지만 맺게 되는 열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건 이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당장 포기하지 못해서이다. 하루 아침에 녹음이 우거지지 않지요. 예수님을 뵙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이 길을, 지금 당장 걸어가야 합니다. 미래형이 아니라 완료형을 써서 십자가 사건이 분명히 일어날 것을 알려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이 길, 죽어서 싹트고 열매 맺는 삶을 지금부터 이미, 분명히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나중에, 미래에 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어쩌면 이미 그 삶을 살고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