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정세랑 장편소설. 문학동네.
마침표까지도 나무랄 데가 없는 이야기. 역시 정세랑. 흥미진진하고 너무 재미진데(사투리 쓰고 싶어서 ㅎㅎㅎ) 치밀하고 따뜻한, 게다가 정중하기까지 한 이 이야기가 서둘러 끝나버리면 나는 어쩌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계절마다 경주에 가 다음 이야기를 건져오고 싶다는 작가의 말을 읽고 나서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번쩍! 제발요!!!
밑줄 그어 남긴 문장들을 다시 읽었다. 나는 정세랑 작가의 힘이 바로 이런 문장들이라 여긴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 잘 드러나지 않아도 소설 전체를 받치는 힘이 이런 문장에서 나오고 나는 또 그의 책에서 이런 문장을 보물 찾듯 발견하는 게 너무 좋다.
p.33
"밤새 갑판을 살폈어야 할 불침번은 잔잔한 파도소리에 그만 잠들어버렸노라고 무릎을 꿇었다. 항해를 맡았던 선원들도 배를 모는 일에만 신경을 쓰느라 평소와 다른 점은 알아채지 못 했다고 했다. 짐과 객을 싣기 위해 선원 수를 최소한으로 했을 테니 고되었을 것이다."
p.199
""질 것이 분명해서 그런 것만은 아닐 거야. 일 년 내내 기다 려온 즐거움인데 누가 더러운 물을 끼얹은 모양새잖아. 부정 한 마음을 품고 짠 저쪽의 베가 강물처럼 아름답게 나온다면, 베 짜기 자체를 싫어하게 될 것만 같고 말이야." 그것만큼은 백제의 장인도 고칠 수 없는 부분이었다."
p.205 ~ p.206
"다음 여름이 될 때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곪은 채로 둘 수는 없었다. 염을 품고는 좋아하는 일도 좋아할 수 없고 아끼는 이도 아낄 수 없다. 처음엔 도은을 위해서 시작했지만 자은의 염려는 어느새 육부 여자들 전체에게로 번지고 있었다."
p.293
"계절마다 경주에 가 다음 이야기를 건져오고 싶습니다. 이 시리즈가 세 권이 될지, 열 권이 될지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열 권을 넘어서면 좋겠습니다. 설자은과 함께 금성을 누벼주시면 기쁠 거예요.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