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23,1-12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가해 연중 제31주일 레지오 훈화)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높이면 낮아지고, 낮추면 높아진다는 말씀을 곰곰이 마음으로 그려보다가 어릴 적 타고 놀았던 시소가 떠올랐습니다. 시소는 혼자서는 타기도 어렵고 탄다고 해도 재미가 없습니다. 상대방이 없으면 안됩니다. 신앙생활도, 시소도 혼자서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지 않습니다. 개인 기록을 측정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함께’ 어울려서 즐기는 놀이에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시소놀이에서 가장 곤란한 것은 상대방의 호응이 없을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올랐으면 상대를 올릴 줄도 알아야 놀이가 되는데, 상대방이 나를 올려주고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내려올 생각을 않는다면 그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매번 평등하고 균등하게 주고받는 사랑이 있겠냐마는, 무심해서 무례할 수 있고 마음을 쓰지 않고 받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과는 ‘서로’라는 관계가 성립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시소처럼, 관계란 나만 해야 하는 일도 아니고 너만 해서도 안 되는 일, 우리가 ‘서로’ 해야 합니다. 몰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알려고 애쓰고, 잊었다고 할 일이 아니라 잊지 않으려고 마음을 써야 하는 일이지요. 무릇 예수님과의 관계는 더욱 그렇습니다.
많은 것이 그렇습니다만, 마음을 굳게 먹는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닙니다. 시소가 실제 발을 구르는 힘이나 사람 무게의 작용과 이동이 있어야 되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마음을 굳게 먹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을 살아가는 우리는 ‘낮은 자의 마음’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낮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마치 시소처럼, 내려오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뒤에 물러나 타인을 높임으로서 조금씩 낮은 자가 되어갑니다. 스스로 올라간다기보다는, 내가 낮아져야만 상대가 올라가고 상대가 자신을 낮춰 나를 높여주어야 비로소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시소입니다.
오르락내리락도 재미있지만 둘이 나란히 공중에 떠 있는 것, 균형을 맞추는 법을 익혀야 하는 것이 시소입니다. 무거운 쪽이 가벼운 쪽으로 가까이 다가갈 때 평행이 유지됩니다. 가까이 다가가 서로 평등하게 눈을 마주볼 수 있는 거지요. 내 쪽으로 기운다 싶을 때 그걸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다가갈 때 우리는 우리의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내가 지금 나를 낮추었는지 높였는지를 알려면 시소의 반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면 알게 됩니다. 내가 지금 나를 낮추어 상대를 높였다면 예수님께서는 다시 나를 높여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가늠하는 잣대는 타인을 대하는 나의 태도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내 앞의 사람이 지금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 내가 그 사람을 올렸는지 내렸는지, 수시로 살피며 기도하는 한 주간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