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食性 人間

또 못 버린 물건들

하나 뿐인 마음 2023. 10. 26. 11:29

은희경 산문집. 난다.

초보가 된다는 것은 여행자나 수강생처럼 마이너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지점에서 나를 바라보게 된다. 나이들어가는 것, 친구와 멀어지는 것, 어떤 변화와 상실, 우리에게는 늘 새롭고 낯선 일이 다가온다. 우리 모두 살아본 적 없는 오늘이라는 시간의 초보자이고, 계속되는 한 삶은 늘 초행이다. 그러니 '모르는 자'로서의 행보로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하는 훈련 한두 개쯤은 해봐도 좋지 않을까.



뭐랄까, 책을 읽다보니 작가님과 은근 친해지는 느낌이랄까, 밥 한 끼 나눈 사이 같달까, 얼굴 한 번 마주한 적 없지만 소소한 일로 가끔 멘션을 주고 받는 sns(페북 아님. 인스타 아님) 친구 같달까…

물론 상상만으로 그칠 일이지만, 괜히 이런저런 공통점을 만들어서 가까운 사이로 엮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해서(이런 경우가 내겐 거의 없기에 더더욱) 약간 일탈의 상쾌함마저 느꼈던 책이다. 특히 면허 얘기가 그랬는데, 저도요, 미국에서 면허 딸 때 선생님의 - 타고난 감각이라는 둥, 수녀님 중에선 아마 제일 잘 할 것이라는 둥, 가장 빨리 시험에 붙을 거라는 둥-폭풍 칭찬에 힘입어 너끈히 통과하리라 믿었던 시험에서 3번이나 떨어져 필기도 한 번 더 치고 네 번째에야 가까스로, 높은 점수임에도 불구하고 ‘critical’에 체크가 되어서 억울하게? 낙방을 거듭하다가 붙은 사람이거든요ㅎㅎㅎ 뵙게 되어 정말 반가워요, 작가님니임(이쯤에선 상상력이 제대로…)!!!!! 이 연필이 뭐냐면요, 이 엽서는요, 이 고양이는 언제였더라….

"저요. 1994년 면 허를 따자마자 운전을 시작해 지금까지 SUV 포함 네 대의 차주였고, 무사고라서 자동 승급된 1종 면허 소지자예요. 그리고 한국 운전경력 10년 차에 치렀던 미국 면허시험에서 여러 번 떨어 졌는데, 사유가 모두 'dangerous'였을 만큼 충분히 난폭했다가 갱생의 길을 걷게 된 조그만 여자랍니다."

글로나마 호들갑스럽게 즐거워해 본 것도 오랜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