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수련소 시절,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가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라'는 것이었다. 기도 시간에는 딴 거 말고 기도만, 휴게 시간에는 휴게만, 일자리 시간에는 일에 집중할 줄 아는 법을 수련소 때 배웠다. 기도가 아무리 좋고 또 하고 싶어도 일하는 시간이나 공부하는 시간에도 기도하려 들면 이도저도 안 된다는, 휴게 시간에 일을 더 하려고 하면 결국 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다는 말이었다. 처음엔 당연한 말이다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고 수도삶을 정립해 나가는데 꼭 필요한 일이었다. 글을 쓰는데 제때 쉼표를 찍고 마침표를 찍는 일처럼,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문장을 시작하는 일처럼 그렇게 중요한 일.
책을 시작하고 미밴드를 빼고 다시 시계를 찼다. 처음엔 내가 스스로 잘 조절한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 손목에 진동이 오면 자동으로 팔이 올라가는 일이 생겼고 성무일도 시간에도 나도 모르게 팔을 올리곤 했다. 습관적으로 팔을 올려 알림을 확인하면서 내 리듬은 조금씩 흐트러졌다. 긴 글을 읽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뭔가를 자꾸 깜빡깜빡 잊고 피곤하고 두통도 심해지는 탓을 미밴드에게 모두 돌릴 수는 없지만, 나는 나에게 조금 더 좋은 일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늦도록 일하는 습관도 많이 내려놓았다. 씻은 후엔 잠들려고 노력한다. 잠이 오지 않는데도 버티는 시간이 아까워 이것저것 해보던 것도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잠이 오지 않는 시간은 그 시간대로 하느님께 봉헌하는 시간으로 여기고, 시간이 아까우면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낮시간에 조금씩 더 걷고, 무엇보다 수도자로서의 내 일과표를 잘 따라가면서...
이 책은 내가 막연하게나마 조금씩 생각하던 것들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고 바꿔나가야 할 분명할 이유도 알려준다. 조금 호들갑스럽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너무 늦지 않게 이 책을 읽어 다행이었다.
p.25
"어떤 영역에서든, 인생의 어떤 맥락에서든 중요한 일을 하고 싶다면 적절한 대상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p.26
"집중력의 위기가 193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기와 동시에 발생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단순한 권위주의적 해결책에 쉽게 이끌리고, 그러한 해결책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트위터와 스냅챗을 오가느라 주의력을 박탈당한 시민으로 가득한 세상은 위기가 연달아 발생해도 그중 무엇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것이다."
p.52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든 차원에서 깊이를 희생하고 있다는 겁니다······깊이는 시간을 요구합니다. 깊이는 사색을 요구해요. 모든 것을 다 따라잡아야 하고 늘 이메일을 보내야 한다면 깊이를 가질 시간이 없어져요. 관계에서의 깊이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에너지가 필요해요. 오랜 기간을 필요로 하죠 거기에 전념해야 해요. 주의력도 필요하고요. 깊이를 요구하는 모든 것이 약화되고 있어요. 그게 우리를 점점 더 표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고요."
p.55
"훈련과 연습을 거치면 속독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사람들은 글자를 빠르게 훑고 자신이 보고 있는 내용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읽은 내용을 검사하면 글을 빨리 읽을수록 이해한 내용이 적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빠른 속도는 곧 적은 이해를 뜻한다. 이 연구 결과는 인간이 정보를 흡수하는 속도에 최대한도가 존재하며, 그 벽을 부수려고 하면 그저 정보를 이해하는 뇌의 능력이 파괴될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p.61
"연구 결과 단순히 이메일과 전화를 받는 행위 같은 ‘기술의 방해’가 직원들의 IQ를 평균 10점 떨어뜨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단기적 차원에서 IQ 10점 하락은 대마초를 피웠을 때 IQ에 가해지는 타격의 두 배다. 즉 업무 수행의 측면에서 볼 때 문자와 페이스북 메시지를 자주 확인하느니 책상에서 마약을 하는 게 낫다는 의미다."
p.65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싶다면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방법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정보의 쓰나미를 흡수하고자 했던 나의 바람이 매일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으면서 늘씬하기를 바라는 것만큼 불가능한 꿈임을 깨달았다."
p.66
"얼 밀러는 우리 문화가 ”산만함의 결과로 인지 능력 저하의 절체절명의 고비“를 만들어냈다고 본다."
p.75
"가는 곳마다 자신을 방송할 뿐 다른 정보는 수신하지 않는 사람들로 둘러싸이는 느낌이었다. 주의가 부패하면 나르시시즘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의가 자기 자신과 자기 자아에만 집중된 상태가 바로 나르시시즘이다."
p.109
"산드라 쿠이 박사는 유럽에서 성인ADHD를 연구하는 최고의 전문가 중 한 명으로, 헤이그에서 나와 인터뷰를 나눌 때 다음과 같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현재 서구 사회는 다소 ADHD의 특징을 보이는데, 그건 우리 모두 수면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 영향은 엄청납니다.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어요. 우리 모두가 안달복달하고, 충동적이고, 차가 막히 면 바로 짜증을 냅니다. 주변 어디서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죠... 이건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증명한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명료하게 사고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자기 능력보다 훨씬 명료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잠을 더 잘 자면 많은 문제가 줄어듭니다. 기분장애나 비만, 집중력 문제 같은 것들이요. 잠이 많은 피해를 복구해 줍니다.""
p.163
"제임스 윌리엄스는 ‘실제로는 환경의 변화만이 진정한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절제가 주요 해결책이라 말하는 것은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p.204
"우리를 화면 앞에 붙잡아두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알고리즘은 (의도는 없었지만 불가피하게) 우리를 화나고 격노하게 만드는 일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분노를 많이 일으킬수록 참여도도 높아진다. 많은 사람이 많은 시간을 분노하는 데 쓰면 문화가 바뀌기 시작한다. 트리스탄이 말했듯이, 이러한 현상은 ‘증오를 습관화’한다. 증오가 우리 사회의 뼈대에 스며드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p.205
"우리가 분노에 보상하고 자비에 벌을 주는 알고리즘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면서, 오늘날 (비난은 더 하고 이해는 덜한) 이러한 태도는 좌파 우파 할 것 없이 모두의 반응이 되었다."
p.207
"과학자들은 수년 전부터 실험을 통해 분노 자 체가 우리의 집중력을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입증해오고 있다.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분노하면 주변에서 벌어지는 논쟁에 평소만큼 집중하지 못하며 "정보 처리의 깊이가 얕아" 짐을 발견했다. 즉, 더 얄팍하고 부주의한 방식으로 사고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분노로 온몸이 떨리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이 웹사이트들의 사업 모델은 매일같이 우리의 분노를 부채질한다. 이들의 알고리즘이 퍼뜨리는 단어가 '공 격, 나쁜, 비난'임을 떠올려보라."
p.211
"알고리즘은 그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영상을 더 오래 보게 만들 내용을 선택할 뿐이다. 트리스탄은 이 사실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뒤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어디에서 시작하든 말도 안 되는 것에서 끝이 납니다."
p.211
"우리가 홀로코스트에 관한 정보를 담은 영상을 본다면 유튜브는 이후로 여러 개의 영상을 더 추천할 것이며, 영상은 갈수록 더 극단적으로 변해서 우리가 다섯 개 정도의 영상을 시청한 뒤에는 결국 홀로코스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될 것이다."
p.211
"유튜브에도 알고리즘이 있다. 그리고 이 알고리즘 또한 사용자가 잔인하고 충격적이고 극단적인 영상을 볼 때 시청 시간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기욤은 이러한 운영 방식과 유튜브가 비밀로 덮어둔 자료를 보았고, 그것이 현실에서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지켜보았다."
p.301 ~ p.302
"많은 사람이 소진될 때까지 일하는 데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성공이라 칭한다. 갈수록 빨라지는 속도의 토대 위에 있는 문화에서 속도를 줄이기란 힘든 일이며, 우리 대다수가 그렇게 할 때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모두 함께 사회• 구조적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p.353
"어릴 때는 속이 상하거나 화가 나면 자신을 달래주고 진정시켜 줄 어른이 필요하다. 이렇게 위로받는 경험을 충분히 하고 나면, 시간이 흘러 성장할수록 혼자서 자신을 달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가족이 주었던 안심과 이완을 내면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쌓인 부모는 자기 잘못이 아닌 다른 이유로 자녀 달래기를 힘들어하는데, 본인이 너무 흥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그들의 자녀도 중심을 잡고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 결과 그들의 자녀는 화를 내거나 괴로워하는 방식으로 힘든 상황에 대처할 확률이 높아지고, 분노와 괴로움은 집중력을 망가뜨린다."
p.379
"친구들과 자유롭게 놀 때 아이들은 어떤 기술을 습득할까? 우선 어른 없이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는 아이는 "일이 벌어지게 만드는 방법을 파악“한다고, 리노어는 말한다. 놀이를 생각해 내려면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자신이 떠올린 놀이가 가장 재미있는 놀이라고 다른 아이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게임을 지속하기 위해 다른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 법을 알아“낸다. 아이는 언제가 자기 차례이고 언제가 다른 친구 차례인지 협상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러므로 타인의 필요와 욕구, 그것들을 충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또한 아이는 실망감과 좌절감에 대처하는 법을 배운다. 이 모든 것을 ”배제되고,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고, 길을 잃는 경험을 통해“ 배운다."
p.380
"리노어의 지적 멘토 중 한 명인 이저벨 벤키 박사는 칠레의 놀이 전문가다. 나와 스코틀랜드에서 만났을 때 그는 지금까지 나온 과학적 증거에 따르면 "놀이가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아동 발달의] 세 부분이 있으며, 그중 하나가 창의력과 상상력"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창의력과 상상력을 통해 문제를 생각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배운다. 두 번째 부분은 타인과 상호작용하고 어울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사회적 유대”이며, 세 번째 부분은 즐거움과 기쁨을 경험하는 방법을 배우는 "살아 있다는 느낌"이다. 이저벨은 우리가 놀이를 통해 배우는 것들이 제대로 기능하는 인간이 되는 데 추가적으로 따라붙는 사소한 요인이 아니라 그것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놀이는 견고한 인격의 토대가 되며, 이후에 어른들이 자리에 앉아 설명해주는 모든 것은 이 토대 위에 쌓인다. 이저벨은 오롯이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자유로운 놀이라는 토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p.381
"요즘 아이들은 성인기를 대비해 줄 삶의 주고받기를 경험하지 못해요." 그 결과 아이들은 "문제를 겪지 않고,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는 짜릿함을 느끼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