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食性 人間

눈부신 안부

하나 뿐인 마음 2023. 8. 13. 23:33

백수린 장편. 문학동네.

"언니. 사람의 마음엔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결국엔 자꾸자꾸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가?" 이 문장을 읽은 뒤로는 소설을 읽는 내내 이 문장이 자막처럼 흘렀다. 정말, 사람의 마음엔 대체 무슨 힘이 있는 걸까. 살아갈수록 뉴스를 읽다가도,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을 듣다가도 사람이 어찌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무너지는가 싶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이 모든 폐허 같은 비참함 속에서 어떤 선함이, 어떤 순수함이, 어떤 곧음이 혹은 어떤 나약함이 끝내 버티고 있어서 다시 빛을 끌어들인다. 이 소설 역시 그런 힘에 대한 이야기다. 이 소설은 우리도 빛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래서 눈부시다.


p.106
""게으른 사람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걸 배우려고 하는 대신 자기가 아는 단 한 가지 색깔로 모르는 것까지 똑같이 칠해버리려 하거든.""

p.109
""언니. 사람의 마음엔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결국엔 자꾸자꾸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가?""

p.142
"우재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하며 자조적으로 웃곤 했지만 나는 사람이 겪는 무례함이나 부당함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물에 녹듯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침전할 뿐이라는 걸 알았고, 침전물이 켜켜이 쌓여 있을 그 마음의 풍경을 상상하면 씁쓸해졌다."

p.214
"“그래. 삶을 단순하게 만들고 몸을 조금이라도 쓰면 인생이 살 만해져.”"

p.227
"상실 이후 시간이 때때로 선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라, 쳇바퀴를 돌듯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p.229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는 것. 언니를 느닷없이 떠나보낸 후, 나는 늘 둘 중 더 힘든 것은 전자일 거라고 확신해왔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울먹이는 한수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 앞에서 덜 고통스러운 상황은 있을 수 없다는 걸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p.304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