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2,3 엎드리지 않고는 해낼 수 없는 일이 있다. #dailyreading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요한 12,3)
가끔, 나만 엎드린 것 같을 때가 있다. 다들 앉아서 밥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공간에서 나만 바닥에 엎드려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을 해도 서럽고 쓸쓸하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것이 향유 한 리트라 치의 봉헌이었음을, 단순히 바닥에 엎드린 것이 아니라 그분 발에 향유를 붓고 닦기 위한 자세였음을, 나만 엎드린 것이 아님을(예수님께서도 곧 나를 위해 바닥에 엎드리실 것이요(내 발을 씻기시기 위해서 요한 13장), 내가 기꺼이 엎드려 그 일을 했을 때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이 엎드림은 예수님의 엎드림과 닮았다.
내가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엎드렸다는 행위만 생각하면 지금 하려는 일이 어떤 일인지, 무슨 마음으로 그 일을 했는지, 누구에게 한 일인지, 그 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잊고 만다. 다 잊고서 그저 ‘내가 엎드렸다’는 사실만으로 서운해하고 속상해 한다. 사실 성경에는(세족례 장면에서도) 바닥에 엎드렸다는 말도 없고 무릎을 꿇었다고도 하지 않는다. 당연하고 또 필요한 동작이었겠지만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동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받기 위해서 손을 뻗는 것처럼, 잡기 위해서 손에 쥔 것을 놓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성주간이 시작되었다. 사순이 깊어지면 일에 치이고 버틸 힘도 약해져 자꾸만 내 안에 갇힌다. 그래서 더더욱 성주간 월요일에는 이 복음을 묵상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엎드리지 않고는 해낼 수 없는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