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에세이. 위즈덤하우스.
난 정말 정세랑 작가의 이런 마음가짐이 너무 좋다. 정세랑 작가가 세상을 여행하며 소중한 경험을 얻듯 나는 정세랑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세잔의 <구불구불한 길>을 찾아서 오랫동안 들여다봤고, 애용하는 인터넷 서점에 조세핀 테이를 관심 작가로 등록했으며,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기회가 되면 <닥터 후>를 봐야지 하며 제목을 머리 속에 꼭꼭 집어 넣었다. 이만하면 정말 남는 장사야^^
p.64
"여러 성별의 친구들이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내 소설 속에 있으면 좋겠다. 악하고 폭력적인 사람만 아니면 아무도 배제되지 않는 세계를 그리고 싶다."
p.64 ~ p.65
"줄곧 관심이 있는 것은 미디어와 현실 사이의 되먹임 관계다. 시민으로 기능하는 남성들은 혐오의 시대에 남성을 대표하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미디어에서도 지나치게 다뤄지지 않는데, 되먹임이 쌓아면 그 점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왔다. 미디어에는 범죄자에 가까운 남성들의 이미지만 넘쳐난다. 언론에서도 신이 나서 확성기를 들이대고 온갖 이야기 매체에서도 마찬가지다. 가학적이고 위법적인 인물들이 우리 공동체에 굉장히 낮은 기준선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선을 좀 끌어올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예 끔찍한 범죄자들은 바뀔 리 없고 그저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하겠지만, 시간에 따라 생각이 변화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건 돼’ ‘저건 안 돼’ 용인하는 선을 바꾸는 게 변화의 핵심이지 싶다. 특히 자라나는 세대에게 새로운 남성상을 제시하고 싶었는데 유해하지 않은, 시민으로 기능하는 남성 캐릭터를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두는 전략은 나이브하지 않느냐는 비판을 받게 되었고 확실히 나에겐 물러 터진 근성이 있는 것 같다."
p.107
"마음속의 저울은 옳고 그름, 유해함과 무해함, 폭력과 존중을 가늠한다. 그것이 망가진 사람들은 끝없이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힌다. 사실 이미 고장 난 타인의 저울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저 내 저울의 눈금 위로 바늘이 잘 작동하는지 공들여 점검할 수밖에."
p.116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부정하는 이들을 언제까지고 두려워할 것이다. “그놈들 머리에 폭탄이 떨어지면 좋겠어!”라든가 “그놈들 발밑에 지진이 나면 좋겠어!”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을 말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가장 순정한 사람들이 희생된다는 것을 외면하는 독선은 얼마나 독한가?"
p.119
"일단은 조롱과 비아냥, 일반화를 피하려고 노력한다. 복잡하게 얽힌 세계에서 한 사람을 덩어리로부터 떼어내 개별적으로 보고 싶다."
p.119
"어느 정도까지 공격적으로 말해도 될 것인가가 오래 하고 있는 고민이다. ‘조신하게, 예쁘게 말해’하는 식의 강요는 지긋지긋해서 굴절 없이 똑바로 말하고 싶은데 또 어느 선을 지나치면 따가운 공격성밖에 남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하면서도 부정적 감정의 발산으로 그치지 않도록 적정 수준을 찾는 것…… 고민은 하는데 매번 실패하는 느낌이다. 언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정교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면 깎아낸 부분이 남긴 부분보다 많아 심지 없는 완곡어법을 쓰게 되고, 세게 밀어붙이는 글을 쓰다 보면 꼭 엉뚱한 사람이 다치게 되어 후회스럽다."
p.135
"W를 만날수록 평화와 정체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해가 갈수록 내 안의 공격성을 제거하고 공격적인 경향의 주변인들을 멀리해온 것은 자기 보존의 방식이었을까, 회피와 퇴행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