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뿐인 마음 2020. 6. 22. 22:28

 

 

30일 피정자는 따로 신부님을 초대해서 성사를 봤다. 우리들이 성인 신부님이라고 부르는 분인데, 이렇게 맑고 곧으면서도 온유할 수 있을까 싶은 분이다. 영혼이 정돈 되어 있다는 느낌을 매번 받는다. 딱 11년 전 대수련 30일 피정 때도 이 신부님께 성사를 봤었다. 그 피정 때는 종신토록 이 봉헌의 삶에 나를 묶느냐 마느냐의 피정이었다. 피정이 깊어질수록 나는 하느님 은혜의 심오함과 수도생활의 귀한 가치를 내 영혼의 얄팍함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고해성사를 보다가, 빈 영혼의 바닥을 박박 긁다가 지치고 지쳐서 이제 그만 해야겠다는 말을 꺼내니, 눈이 동그래지시면서 "나는 아주 잘 살 것 같은데요?" 이렇게만 말씀하셨다. 나는 하도 지쳐서 그 말을 믿지도 않으면서 혼자 좀 울다가 성사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아직까지도 이렇게 남아 있다. 잘해주신다고 내게 이런 저런 설명과 따뜻한 말을 많이 해주셨었다면 나는 아마, 반박하기 위한 말들을 생각해 내느라 내 피정의 나머지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금도 가끔 한다. 가타부타 할 말조차 생각나지 않는 말씀 "나는 아주 잘 살 것 같은데요?"는 살다가 휘청거릴 때마다 조용히 내 안에서 떠오른다. "나는 아주 잘 살 것 같은데요?"

 

나는 면담성사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군더더기 없이 성사를 마무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번엔 강복까지 다 받고 나서 질문을 꺼냈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겠다 싶은 상황이 왔을 때 저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설명도 없는 다짜고짜 질문에 신부님은 지혜로운 방법을 몇 가지 알려주셨고, 덧붙이시는 말은 "그러나 우리는 결과를 알 수 없지요. 미리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알 수 없습니다." 모든 좋은 방법을 다 써봐도 그 결과가 늘 좋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씀에 괜히 마음이 놓였다. 그래, 이 정도만 해도 좋다 싶은 마음으로 인사를 하려는데 신부님 말씀이 이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적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수도생활을 그럴수록 더 충실히 해야합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질 필요가 있는데 이것은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 더 문을 활짝 여는 것입니다."

 

성당에 앉아 신부님의 마지막 말씀 두 가지를 내내 생각했다. 내 말과 내 행동이 더 진실하게 전달되기 위해서라도, 돌아오는 반응에 내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더 성실히 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내 말에 무게를 더하고 싶을수록 나는 더 신실하게 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마치 이 고해성사의 마무리를 미리 아시고 나를 피정에 들어오게 하셨나 싶을 정도로, 나는 지금 매일 규칙서를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며 내 삶 하나하나를 다시 맞추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더불어 내 눈과 귀, 여러 감각들을 부정적인 것이나 부질 없는 것에 노출시켜 과몰입되지 않도록 조금 떨어지되 마음의 문을 닫고 관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눈과 귀, 감각들을 성령께 더 활짝 열어 보임으로써 은총으로 이 시간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 어둠을 이기는 것은 더 큰 어둠이 아니라 빛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겼다. 신부님의 말씀이 또 조용히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아주 잘 살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