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뿐인 마음 2020. 6. 6. 17:49

 

 

첫째는 "회수도자"들이니, 그들은 수도원 안에서 살며, 규칙과 아빠스 밑에서 분투하는 이들이다.(RB 1,2)

아무리 생각해 봐도 놀라운 일이다. 은수 생활도 해보고 회수도자 생활도 해 본 베네딕도 성인이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게 온갖 고초를 다 겪고도 마지막으로 택한 것이 회수도자 생활이요 그들을 위한 공동체 수도 규칙을 썼다는 사실이, 피정을 시작하자마자 깊이 들어와서 내 가슴을 마구 두드렸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아픈 삶일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성인이 아닌가. 나 역시 함께 사는 기쁨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생활이 고독과 고난과 유혹의 광야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며 살아왔다. '잘 훈련되어 있는 형제들의 진지(陣地)'라는 말은 또 얼마나 가슴 깊이 와닿는가. 이번 피정은 베네딕도 성인이 왜 회수도생활을 택했는지, 왜 회수도자들을 '가장 굳센'(13절)이들이라 표현했는지를 조금씩 알아가는 피정이다. 

 

보라,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형제들이 함께 사는 것이!

머리 위의 좋은 기름 같아라.

수염 위로,

아론의 수염 위로 흘러내리는,

그의 옷깃 위에 흘러내리는 기름 같아라.

시온의 산들 위에 흘러내리는

헤르몬의 이슬 같아라.

주님께서 그곳에 복을 내리시니

영원한 생명이어라. (시편 133,1-3)

 

분원 생활의 고단함을 잠시 피해 영육간의 쉼을 갈구했는데, 분원에서 마주친 인연들이 이 피정 동안 나를 너무도 굳건하게 세우고 있다. 침묵 속에서 지나치며 눈빛만 확인하는 얼굴들이지만, 나를 위해 분명히 기도해 주리라 확신하게 되는 수녀님들, 작은 표정 하나도 놓치지 않고 염려해주는 수녀님, 멀리서 축일에 맞춰 손수 적은 카드를 피정 장소로 보내신 할머니 수녀님, 커피를 마시지도 못하면서 나를 위해 커피를 골랐을 동기 수녀, 피정을 함께 한다는 걸 알게 된 후 미리 축일 선물까지 챙겨온 선배 수녀님... 다들 공동체 생활에서 이어온 인연들이다. 주님께서 그곳에 복을 내리시니 영원한 생명이어라.(시편 1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