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한 장

나는 슈갈이다

하나 뿐인 마음 2018. 8. 3. 14:06



한영미 글. 남궁선하 그림. 나무생각.

다른 동화들보다 어른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유달리 많이 하게 된 책이다. '사전 제압'을 해서 시작부터 쉬운 길을 걸으려던 선생님이 영화 '우리들'에 나오는 선생님처럼, 선한 사람의 별뜻 없는 행동으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선생님으로 끝나는 건 아닌가 싶어 마음마저 졸여가며 읽었다. 다행스럽게도, 상처를 입혔던 처음의 기억은 희미했지만 어른으로서 해야할 일을 결국 지혜롭게 해낸다. 


책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괴로운 생각 중 하나가 '아이들이 어쩌면 이토록 영악한가.'였다. 종종 떠올리게 되는 기억인데, 예전 성경공부 후배가 선생님으로 출근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나누기 모임에서 펑펑 울면서 "아이들이 천사 같지도 않고, 너무도 못됐고 되바라져서 희망이 다 꺾인 기분이예요. 무얼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워요."라 말했던 게 또 기억났다. 그래, 하지만 나 자신도 그랬다. 스스로 꽤나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수녀원에 갔는데, 수련 시간 동안 내가 직면한 나의 바닥에는 평생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이 있었다. 어둡고, 사납고, 거칠고, 이중적인 '나'. 평소 점잖은 척, 고상한 척 했던 내 위선의 실체를 보았던 날(http://singthelord.tistory.com/447)에도, 공포가 몰려올 때 내 손목에 쏠리던 '살의'에 가까운 공격 본능을 느꼈고 내가 그런, 그럴 수도 있는 사람임을 그날 이후 가끔 생각하곤 한다.  


아이들도 그렇다. 우린 모두 장단점을 함께 지니고 있지만 선생님의 말처럼, 사람은 누구든 장점과 단점이 있고 장점이 가장 좋다고도 단점이 가장 나쁘다고도 할 수 없다. 자신의 장점을 모든 사람이 부러워한다고 해도 그걸 못 가진 사람 위에 군림할 수 없다. 장점이나 단점 어느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고. 


가장 놀라운 건 역시 수아이다. 조금씩 조금씩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수아에게 있어 가장 큰 힘은, 동생을 향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은 비록 늪에 빠진 것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고 그 누구에게도 말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동생에겐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언니에게 말하라던 수아. 이 마음이 결국 수아 스스로도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할 용기를 내도록 하지 않았을까. 


요즘 아동 폭력에 관한 동화를 계속 읽고 있다. 우리 성당 아이들이 관련되어 있어 내게도 또 다른 지혜가 필요했다. 그 중 한 아이의 어머니께 일부러 부탁하여 도서관에서 책을 계속 빌리고 있는데, 어머니와 그 아이가 이 책들을 보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지금까지 딱 열 권을 읽었고 오늘 드디어 아이 엄마한테서 책 읽고 생각이 많아졌다는 문자가 왔다. 복사학교 끝나고 나면 함께 커피 한 잔 해야겠다.

p.101 "“그럼 너도?”
“너도라니?”
수아는 ‘도’라는 말이 이렇게 편안한 느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

p.102 "“그 애들이 창과 칼로 나를 공격할 때 막아 내야 하잖아. 방패가 필요해. 나는 방패를 만들지 못했어. 대부분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은 방패를 만들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아. 피하고 숨기에 급급해. 적이 나를 공격할 때 등을 보이면 그건 도망가는 자세야. 그러면 더 만만하게 보고 쫓아오지. 나는 도망가지 말고 적을 향해 서라고 말하고 싶어. 이렇게 방패를 들고 말이야.” 벙글 씨가 가슴 앞에서 두 손바닥을 나란히 폈다."

p.125 "수아는 뒤늦게 정아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정아야,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언니에게 꼭 말해.” 수아는 정아에게 이 말을 꼭 해 주고 싶었다. 정아는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대답도 없었다. 수아는 내일 아침에 한번 더 정아에게 말해 주리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