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마음의 법
조안 키티스터 지음. 성찬성 옮김. 성바오로.
묵주를 돌릴 때 첫째 신비에서 다섯째 신비로 나아가며 묵상을 하지만, 어떤 날은 다섯째 신비에서 끝나지 않고 첫번째로 다시 넘어가 기도를 이어갈 때 희미했던 묵상이 서서히 분명해짐을 느끼곤 하는데 십계명도 그럴 때가 있다. 특히 9, 10계명의 끝을 1계명과 이어볼 때 조금씩 십계명의 의미를 알 듯 하다. 기도는 내게 있어, 삶의 자투리 끈들을 하나하나 이어 붙이며 인생의 의미를 가늠하고 그분 섭리를 깨닫는 행위이다.
십계명은 묵상하거나 교리할 때 늘 녹록치 않는 숙제다. 계명 하나하나의 의미를, 표현에 갇혀 담겨 있는 의중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표현의 진수를 알아듣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키티스터 수녀님의 이 글이 반갑고 고맙다. 십계명이 신앙인을 이유 없이 옥죄는 감옥이 아님을, 무신론자의 조롱거리가 아님을, 멍에가 아니라 선하고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 하느님의 표지판임을 나부터 깨달아가는 길에서 ... 확신을 더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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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은 공동 이해관계 집단의 법이 아니라 '마음의 법'이다. 십계명은 단순히 질서 있는 삶이 아닌 충만한 삶으로 이끌어 가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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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십계명)은 그들, 이후에 올라선 통치자 누구라도 바꿀 수 있는 모세의 법이 아니라 하느님의 법에 충실하게 만드는 독특한 사회로 만들어 갔다. 이 법은 인간의 변덕과 환상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바꾸거나 폐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법은 언제까지나 히브리 공동체의 마음과 정신에 아로새겨지게 되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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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십계명으로 문초를 당하고 있다기보다는 십계명으로 변모하게끔 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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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은 따르도록 세밀하게 명시된 금지 규정들이라기보다 삶으로 실천하는 원칙들에 해당했다. 이 법은 분명히 생활 방식과 생활양식, 마음 자세, 인간 공동체 곧 국민의 정신을 체현하는 데 뜻이 있었다."
1.성찰의 법
p.26 ~ p.27
"계명의 힘은 그것이 우리를 불러 세워 삶에서 진실로 중요하고, 진실로 궁극적인 무엇을 기억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에 있다. 계명은 우리가 섬기지만 결국에는 반드시 우리를 실망시키는 미혹들에서 우리 자신을 구해내고자 시도한다. 우리는 돈의 힘에 희망을 걸지만 그것을 얻고 나서도 변한 것이 전혀 없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이런 관계에서 저런 관계로 옮아가지만 여전히 그 관계들을 제대로 다룰 수 없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맨 처음 사랑을 얻었다고 생각했던 그때 이상으로 사랑을 얻어 낼 능력이 더는 없으며, 우리가 지금 지니고 았는 사랑들에 대한 확신마저 줄어든다. 우리는 복종은 얻어 내지만 존경을 얻어 내지는 못한다."
p.27
"운이 좋다면, 우리가 언제까지나 진실로 소유하게 되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가 우리 내면에 있는 것으로서 우리 스스로 배양해 온 것임을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이 우리의 자신감, 영성 교사, 자기정의, 자부심, 용기, 진실이 되어 버릴 때 우리는 그저 사는 체하고 있을 따름이다."
p.28
"대단히쉬운 일이 다른 사람의 신들을 비판하고, 일종의 종교적 제국주의를 신봉하면서 우리 스스로 첫째 계명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p.28
"우리가 가공하지 않고 양념하지 않은 온갖 잠재력을 지닌 인생의 맛을 피하기 위해 오감을 만족시킬 때, 우리가 삶의 고통을 둔화시키기 위해 감각적인 만족들을-마약과 알코올, 성행위와 육체의 안락을- 우리의 신들로 모실 때, 우리는 인생의 껍데기만을 살아갈 뿐이다. "
p.28
"하느님에 대한 감각이 우리의 감각과 다른 사람들을 불충한 사람으로, 이교도로 단죄한다는 것은 창조 과정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피조물을 열 달을 거쳐 태어나지만 타고난 인격체가 되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린다. 영적인 삶은 서서히 밝아 오는 일종의 전진 과정이다. "
p.29
"우리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우상 숭배를 자행한다. 우리는 우리의 모상에 따라 하느님을 지어낸다. 그리고 이것은 온갖 우상들 중에서도 가장 처참한 우상이 되어 버린다."
p.29
"우리는 하느님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다른 말로 정의하고, 다른 어조와 운율로 예배하는 이들에게서도 하느님에 관해 배울 것이 많다."
2.존중의 법
p.37
"하느님이 ‘그’가 되는 한, 그 하느님은 거짓된 하느님이다. 만일 하느님이 순수한 영이라고 한다면, 하느님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다. “남성적인 하느님 상이 일반 그리스도인의 상상 속에 제아무리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을지라도, 신학적 전통이 하느님에게 성을 지정해 드린 일은 결코 없었다.”(신학자 산드라 슈나이더)"
p.44 ~ p.45
"맹세는 진실을 더 진실하게 만들어 주지 않으며 허위의 결과만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 그리고 그 상황은 심각한 것이다."
p.45
"두 번째 계명은 어쩌면 죄인들보다 경건한 자들이 더 많이 위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 계명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고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 계명은 또한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 하느님의 존재를 빌려, 하느님의 권능을 빌려 하느님 노릇을 하지 말라고도 말하고 있다. 이 계명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지 말라고 말한다. 허위를 보증하는 데 하느님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은 헛일이다. 하느님께서 결코 하실 리 없는 일을 하기 위해 하느님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 역시 헛일이다."
p.54
"하느님을 걸고 단언하는 것이 우리를 악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렇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행하면서 드러내는 부덕한 의도이다. "
p.56
"아랍 속담은 “말이 네 입에서 나왔을 때는, 말이 우리를 지배한다. 그러나 말이 네 입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는, 네가 말을 지배한다.”고 가르친다. 거친 표현이 그저 순진하게 감정을 표출하는 하나의 형식일 수도 있지만 그대로 더 나은 것이 감정의 자제이다."
3. 기억의 법
p.60 ~ p.61
"‘안식일’은 모든 생명체에 정의를 요구하는 낱말이다. 하지만 이 신세계에서는 안식일의 의미가 하루가 다르게 퇴색되고 있다. 안식일이 인간 존엄성의 근간과 모든 생명의 성스러움을 존중하는 히브리인의 외경심에서 나온 것만은 분명하다. 안식일은 사람들이 피곤에 지쳐 ‘쉬는’ 날이 아니다. 이 날이 휴일이 되는 까닭은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죽을 때까지 내몰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 모든 생명체는 설령 육체적인 면이 아니더라도 정신적인 면에서, 정신적인 면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육체적인 면에서 스스로를 쇄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p.64 ~ p.65
"그리스도인에게 일요일 안식은 물론 경축에 뜻이 있지만, 거기에는 또한 ‘기억’한다는 뜻도 담겨 있었다.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기로 되어 있느닞, 왜 창조되었는지를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종종 내외적으로 자기 파멸을 향해 곤두박질하고 있다 싶은 세계에서, 우리 모두가 다시금 필요로 하는 일이다. 안식일은 삶의 핵심이요, 삶의 성장에 있어 쐐기돌이며, 삶의 의미를 찾는 열쇠이자 삶의 미래로 나아가는 통로이다."
p.64
"일요일의 중심축은 예수님의 생애였다. 부활이 죽음을 이겼고 생명은 영원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그 개념은 동일했다. 삶을 가볍게 여겨서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정기적인 성찰은 한없는 에너지를 불어넣었고 해로운 방향을 알려 주었다."
p.69
"세 번째 계명이 지적하는 진정한 죄는 일요일에 교회를 나가지 않는 죄가 아니다. 그것은 진지하게 하느님을 찾지 않는 죄이다."
5. 생명의 법
p.106
“사람을 죽이지 마라.”라는 다섯 번째 계명을 거스르는 가장 큰 죄는 우리 주변의 세계에서 진행되면서 서서히 생명을 파괴해 나가는 어떤 것에 대한 무관심일지 모른다. 내가 어떤 것을 끝장내기보다 구하고 싶어서 거기에 충분한 관심을 쏟을 때, 나는 창조의 진정한 의미를 터득한 셈이다."
6. 투신의 법
p.114
"“간음하지 마라.”라는 계명은 영구불변의 개념을 가족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지니는 영적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 준다. "
p.116
"자신을 위해 상호 관계를 무시하고, 협동 관계를 악용하며, 자기도취에 빠져 성적으로, 감정적으로, 심리적으로 서로를 괴롭히는 것은 여섯 번째 계명을 위반하는 일이다."
p.119
"다른 누군가의 목숨과 사랑을 수중에 넣어 완전히 쓸모없게 만들고 자신은 ‘그것 없이도 제 갈 길을 잘만 헤쳐 나갈’ 때, 그것이 바로 간음이다. 그것은 절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착취이다. 그것은 상호 관계가 없는 방출이다."
p.120
"우리는 여섯 번째 계명이 육체적인 부정행위와 관련된 것처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의 가장 사소한 부분일 수도 있다. 여섯 번째 계명은 마음의 성실성과, 우리가 사람들을 육체적으로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것 이상으로그들을 정신적으로 사랑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간음은 누군가에게 헌신할 뜻도 없이, 누군가를 대신하여 기꺼이 죽을 마음도 없이 사람을 개인의 육체적 만족에 이용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를 두고 우리는 “어떤 조건도 달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 의미는 어떤 약속도 하지 않는다, 어떤 의무도 떠맡지 않는다, 어떤 상보성고 없다는 것이다. 내면에서와 마찬가지로 외면에서도 한낱 반사적인 행동일 뿐, 실질적이고 긴밀한 유대는 전혀 없다는 말이다."
7. 나눔의 법
p.130
"성경에서 말하는 도둑질은 사적이거나 개인적인 죄라기보다 사회적인 죄이다. 우리가 필요치 않은 것을 손에 넣는 짓,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것을 파괴하는 짓, 공동체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필수품을 제공하지 않는 짓이 바로 도둑질이다."
p.138
"우리가 작은 일에 얼마나 성실한가 하는 것이 결국 큰일에 얼마나 성실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단순히 우리 자신의 삶에서가 아니라 우리 주위의 사회 속에서."
p.138
"우리가 입에 올려 이야기하지 않는 또 다른 종류의 도둑질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아무것도 갖지 않은 이들에게 조금도 베풀지 않는 종류의 도둑질이다. 이런 부류는 지상의 온갖 재화를 혼자서 소비하고 통제하고 비축하는 방식으로 도둑질을 한다. 우리는 이를 “극렬개인주의”라고 부른다. 속지 마라. 이것은 영적인 폭음이자 폭식이다."
p.140
"우리가 소유하기로 작정한 것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욕구들은 그것이 충족되었든 충족되지 않았든 간에 우리에게 자신이 진실로 누구인가를 말해 준다. 깊이 들여다보라. 자기 자신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라."
8. 발언의 법
p.147
"내가 하는 말은 인격체로서의 나를 규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말하고 있는 바를 규정하기도 한다. 즉, 그것은 내가 정직한가 정직하지 못한가, 올바른가 올바르지 못한가, 완전무결한가 도덕적으로 영혼이 파산한 상태인가를 지정한다."
p.155 ~ p.156
"다른 사람을 정직하게 대한다는 것은 진실을 다룰 수 있는 상대방의 능력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최대의 찬사이다."
9. 자제의 법
p.162
"아홉번째 계명에서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은 탐냄이다. 성행위도 아니고 취득도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탐냄이다. 따라서 우리가 성적 무절제나 재산에 대한 욕심을 강조하면서 묵과하고 넘어가는 것은 탐냄의 의미와 그 위험성이다. 바꾸어 말해, 그것은 ‘네 마음속에 타오르는 욕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해소되지 않은 결함이다."
p.162 ~ p.163
"탐냄은 굴레 풀린 욕망이라는 정신적 질병이다. 이는 한껏 만족하고자 하는, 그러고 나서도 더 갖고자 하는 결핍이다. 이는 끊임없이 오감의 만족을 요구하는 결핍이다. 이는 자아와 삶과 필요한 것들과 조화를 이룰 수 없는 무력함이다. 이는 광분하는 자기 강화요, 철저히 자아도취에 빠진 삶이다."
p.163
"탐냄은 영혼의 죄요 마음의 질병으로서, 항구적인 욕구 불만으로 이어진다. 이는 마음 한가운데서 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바라도록 선동하고, 늘 가능한 것보다 더 많이 얻어 낼 길을 모색하도록 강권하며, 꼭 필요하든 필요치 않던 간에 우리가 바라는 것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주에 넣도록 압박하는 뜨거운 자극이다."
p.164
"탐냄은-내가 바라는 것을 소유하고, 내가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손에 넣고, 내가 만나는 사람을 모조리 이기고자 하는 미숙하고 무자비한 욕구는- 나는 소모시키고 나를 다시 한 번 들떠 미친듯이 날뛰도록 만든다."
p.165
"제어할 능력이 결여되는 것이 죄가 된다. 이성과 의지가 이유 없는 욕망으로 대체되는 것,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죄이다."
p.170
"남자들이 진실로 남자가 될 때, 여자들은 보호받을 필요가 없게 된다."
p.170
"음욕은 사실 성이 아닌 욕망과 연관되어 있다. 음욕은 쾌락이 아닌 권력과 연관되어 있다. 음욕은 사랑이 아닌 지배와 연관되어 있다."
p.170
"우리가 자기 자신만큼 다른 사람의 선한 이익을 위하기보다 우리 자신의 만족을 위해 그 사람의 몸을 어떤 방식으로든 성적으로 또는 상업적으로 이용할 때, 그것은 음욕이다. 성이 개입되는지 여부는 상관없다."
p.170
"자기 것이 아닌 것을 바랄 때, 우리는 결국 우리가 소유하기 보다 오히려 우리를 소유물로 만드는 어떤 것을 바라는 셈이 된다."
p.170 ~ p.171
"“여자들은 아버지, 남편, 동료들이 원하는 대로 따르지 않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스스로의 야심을 실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페트라 켈리의 말이다. 자유로이 오가고 스스로 완전해지는 사랑만이 진짜 사랑이다."
p.171
"그대는 삶에서 얻지 못한 것 때문에 걱정하지 말고, 얻은 것을 두고 걱정하라. 우리가 가진 것을 다루는 방식이 우리 주위의 다른 모든 사물을 다루는 방식을 결정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 영혼의 질을 재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10. 확신의 법
p.176
"우리가 파묻혀 사는 온갖 물건들 너머를 바라볼 때라야 비로소, 느슨한 손으로 그 모든 것들을 잡을 줄 알 때라야 비로소, 우리는 만물이 그 안에서 존재하는 유일한 분을 발견할 수 있다"
p.177
"신비가들은, 만일 그대가 하느님 이외의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욕망을 버린다면 그 분을 뵙게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축재와 소유를 초월할 때, 십계명 전체가 가리키고 있는 유일하신 분이 그대를 붙들고 끌어안으시리라는 것이다."
11. 첫 번째 사랑의 법
p.197 ~ p.198
"권위를 존중하고, 교회에 나가고, 하느님께 신앙을 고백하고, 대단히 깨끗하고 냉정한 삶을 살고, 절대 1원 한 푼 훔치지 않고,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절대, 탐욕에 빠져 들지 않고, 절때 욕정에 굴복하지 않으면서 실제로 하느님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 일은 가능하고도 남는다."
p.200
"우리가 영혼을 다해 진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할 때 지상의 그 무엇도 우리의 정신을 파괴하거나 우리가 가는 길을 혼란에 빠트릴 수 없다."
p.200
"우리가 영혼을 다해 진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할 때 지상의 그 무엇도 우리의 정신을 파괴하거나 우리가 가는 길을 혼란에 빠뜨릴 수 없다. “나의 날을 내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관장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도움이 된다.”는 찰스 스윈돌의 말처럼."
p.201
"우리는 잘 살아가자면 삶의 모든 단면들이 담고 있는 의미를 의식적으로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어떤 일을 왜 하는지, 다른 어떤 일을 왜 하지 않는지, 그 의도가 이 순간 내게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 일에서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 지금 어디에 자리 잡고 계시는지 물어야 한다. 앤섹스턴은 말했다. “나는 하느님께로 걸아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서는 한 치도 걸을 수가 없다.”"
p.202
"‘이성’은 하느님이 계신다는 추론된 사색의 결론에 불과하다. 절망에도 불구하고 베푸는 사랑, 사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베푸는 사랑은 우리가 생명 그 자체보다 더 거대한 자석에 달라붙어 있음을 드러내는 확실한 증거이다."
p.202 ~ p.203
"우리가 우리 자신의 바깥에서만 하느님을 생각하고 내면에서 함께 생각하지 않는 한, 하느님이 우리가 숨 쉬는 대기이시며 우리가 타고 넘는 심장박동이시라는 사실을 결코 실감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잊고, 하느님을 놓치고, 하느님을 간과하고,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하느님이 우리를 살아 있도록 지켜 주는 전부이심을 알 때, 우리는 하느님을 알아보게 된다. 메헤르 바바가 말했듯이, “하느님을 발견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귀착한다는 것이다.”"
12. 두 번째 사랑의 법
p.207
"두 번째 계명은 우리가 스스로 노력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는 마술적인 신을 찾는 우리 내면의 욕망에 대처하도록 만든다. 우리가 시작한 전쟁에서, 우리가 제조한 폭탄에서, 우리가 만들어 낸 가난에서 하느님이 우리를 구해 주시기를 기대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는 셈이 된다."
p.210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서 발견하기 두려워하는 무엇인가를 다른 사람들 안에서 찾아낸다. 두 번째 사랑의 법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 안에 존재하되 우리가 좋아하지 않거나 두려워하거나 평가 절하하고 있는 그 무엇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p.210 ~ p.211
"두 번째 사랑의 법은 우리 모두를 향한 일종의 경고이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겁내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이를 다른 사람들 안에서 찾아내어 배척하리라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온갖 약점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이 상대방도 받아주시리라고 믿음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상대방을 참아 줄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내면에서 배척하고 있는 것을 진실로 사랑하기란 결코 불가능하다. 우리 자신의 약점들과 결함들, 열등하고 취약하고 왜소한 면면들, 모자람들을 인정하면서 자기를 받아들일 때라야 우리는 상대방에게 진실로 팔을 벌릴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