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칼이 될 때
홍성수 지음. 어크로스.
말에 다쳐본 적이 없는 사람, 말에 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난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말과 행동이 곧 그의 인격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또한 사람을 무너지게도 부서지게도 하는 말은 상대방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결국 파괴한다는 걸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나 자신부터 성찰해 보고자 이 책을 골랐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한 부분을 누군가가 충고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저자는 혐오와 차별의 현실에 무감각한, 그래서 별다른 대책조차 없이 수수방관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좀 더 실천적이며 나 자신의 언어를 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길 바랬던 나의 기대와는 조금 다른 방향의 책이었지만, 혐오표현의 정의와 문제, 한국 사회 안에서의 혐오의 역사와 끼치는 해악 등등 평소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짚어볼 수 있었다.
특히 대항표현에 관한 소개와 의견이 내겐 생각할 거리도 주었고 평소 내가 고민하던 대처 자세에 대한 방향도 제시해 주었다.
집회서에 이런 말이 있다. 매에 맞으면 자국이 남지만 혀에 맞으면 뼈가 부러진다. (집회서 28:17) 요즘은 뼈가 부러지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사람을 마지막 벼랑까지도 몰고 갈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언어, 혐오 표현이겠다.
혐오 표현이나 혐오 범죄를 접하면 가장 먼저 분노가 떠오른다. 분노는 당장 큰 폭으로 산을 오를 수 있게는 하겠지만, 분노만으로는 산맥 같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을 것이기에 그 대항 방법이 늘 고민이었다. 뒷부분은 다시 읽어보고 나만의 메뉴얼이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언제 어디서든 들려줄 수 있도록 요약 정리를 좀 해둬야겠다.
p.27
"혐오표현은 소수자를 사회에서 배제하고 차별하는 효과를 낳는다. 혐오표현 자체가 성소수자에게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차별로 직결되는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현과 행위는 이분법적으로 분리될 수 없으며 표현이 곧 차별의 “사회의 현실을 구성”한다고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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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
"된장녀 신상털기와 데이트 폭력, 성폭력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 제기다. 다양한 수위의 차별, 적대, 배제, 폭력의 말들을 ‘혐오표현’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내 이 문제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의도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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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
"소수자들이 처해 있는 불평등의 맥락 때문에 혐오 표현은 그 표현 순위와 상관없이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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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
"어떤 혐오 표현은 특별히 대응하기도 구차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두면 고착화되어버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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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1
"소수자나 그 집단에게 직접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적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것도 괴롭힘으로 간주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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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0
"혐오표현의 해악을 치밀하게 논증한 제러미 월드론은 혐오표현이 한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의 존엄한 삶을 파괴하고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구성원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공공선public good’을 붕괴시킨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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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3 ~ p.84
"한 사람, 두 사람 거침없이 혐오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더욱 강도 높게 말하는 것이 인기를 끌게 되어 혐오 표현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면서 혐오표현은 점차 확대, 강화되고 활개를 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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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9
"비하 의도가 없었음을 항변할 것이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 효과에 너무 무심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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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6
"증오범죄는 피해자 집단에게 ‘너희들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피해자 집단이 평등한 사회 구성원이 아님을 선언하는 것이며, 차별과 배제를 공공연하게 예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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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6
"편견, 혐오, 혐오표현, 그리고 증오범죄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혐오표현을 하는 사람이 증오범죄도 저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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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0
"어떤 존재를 향해 그 정체성을 드러내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코 관용이 아니다. 드러내지 말고 살라는 요구 자체가 차별이다. 게다가 어떤 소수자 집단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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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0
"표현의 자유는 원래 ‘소수자’의 권리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수자나 강자는 자유자재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소수자에게 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 가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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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3 ~ p.164
"혐오표현에 대한 금지, 처벌이 한편으로는 국가가 소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있다는 신호를 소수자들에게 보냄으로써 그들을 안심시키고, 다른 한편으로 시민사회를 향해 혐오표현을 관용하지 않는다는 도덕적 정체성과 사회적 가치를 확인시켜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혐오표현금지법은 ‘공적 선언’으로서 ‘상징적 가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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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4 ~ p.175
"형사 규제, 민사 규제, 차별시정은 모두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방식인 반면 형성적, 촉진적, 적극적, 사전 예방적인 방식의 규제도 있다. 혐오표현의 금지, 처벌을 통한 문제 해결이 사후적, 소극적, 부정적인 조치라고 한다면, 형성적인 규제는 혐오표현이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여건을 만들어가는’ 긍정적인 조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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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3
"권력 관계에서 발생하는 혐오표현은 우선적인 규제 대상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이러한 영역에서의 혐오표현은 차별로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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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3
"직장에서 상급자가 하급자를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괴롭히거나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경우를 두고 “자율에 맡기자”, “맞서 싸우면 된다”고 하는 것은 순진한 것이 아니다 무책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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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7
"만약 차별과 폭력의 실현이 임박했다면, 시민사회의 자율적인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국가가 형사처벌로 대응하는 것이 당연하다. ‘증오선동’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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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7
"증오범죄는 ‘진공상태’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 대상 집단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의 역사, 그리고 그들을 차별하고 적대시하는 환경 속에서 발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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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1
"증오범죄자들은 흑인, 여성, 성소수자를 고립시키고 배제하려고 한다. 이에 맞서는 우리의 대응은 차별과 배제를 획책하는 이들을 사회에서 고립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시민사회의 몫이기도 하지만 법과 정책으로 추진되어야 하는 것이며,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자가 일관되게 견지해야 할 입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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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0 ~ p.221
"혐오표현의 선동을 막는 중요한 방법으로 ‘대항표현’이 있다. 대항표현은 말 그대로 혐오표현에 맞대응하는 것이다. 일본의 카운터 운동은 혐한시위에 맞서 맞시위를 벌이는 방식으로, 서울대 성소수자 현수막 사건은 보란 듯이 현수막을 복원해내는 방식으로 혐오에 맞섰다. 이러한 연대의 실천이 꼭 거창한 시위의 형태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동아리에서 어느 회원이 소수자 회원에게 차별적인 언사를 했을 때 그 소수자 회원이 배제되고 고립되는 것을 저지하고 그와 연대하는 것도 훌륭한 실천이 된다. 자신이 속한 공간 어디에서든 그렇게 국지적 차원의 실천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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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1
"대항표현의 가장 큰 의의는 혐오의 지형을 뒤바꾼다는 것이다. 혐오의 선동은 소수자 집단을 고립시키려고 하지만 대항표현은 거꾸로 소수자와 제3자를 연대시켜 혐오주의자들을 고립시킨다. 일본의 카운터 운동은 다수 일본인과 재일 코리안의 연대를 통해 인종주의자들을 고립시켰고 서울대의 성소수자 현수막 복원은 다수의 학생들이 성소수자와 연대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혐오 세력의 준동을 막았다. 그 과정에서 혐오표현 피해자들의 고통이 덜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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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2
"대항표현은 제3자뿐만 아니라 피해 당사자 스스로가 할 수도 있다. 비하적인 혐오표현에 대해 웃어넘기거나 침묵하지 않고 조목조목 문제점을 따지는 등의 일상적 실천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무엇이 문제인지 합당한 이유를 찾고 논리를 제시하며 싸워나가는 과정에서 ‘자력화’도 가능해진다. 자신의 권리를 알고 권리 주장을 하는 과정에서 대항 주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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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3
"당사자 개인 이외에 사건 현장의 목격자들, 그리고 사건을 전해들은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이 집단적 항의에 나서야 한다. 그렇게 함께 혐오표현에 대응함으로써 피해자가 아니라 발화자를 고립시키는 것이 대항표현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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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3
"다만 대항표현에 너무 많은 환상을 갖는 것은 금물이다. 당사자 개인의 대응은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거나 피해를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결국에는 집단적, 조직적 대응이 문제 해결에 더욱 중요하다. 혐오표현으로 고통받는 당사자 개인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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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4
"대항표현을 시민사회의 몫으로만 떠넘겨서도 안 된다. 시민사회의 자율적 실천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국가적, 법적, 제도적으로 대항표현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권센터, 상담소, 인권 교육, 홍보 자료 등을 제공하는 것은 대항표현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방법이다. 대항표현을 한 사람이 거꾸로 부당한 위협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 역시 국가, 법, 제도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