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부르심따라

주여, 이 모진 세월에...

하나 뿐인 마음 2017. 1. 8. 20:08


주여, 이 모진 세월에 자비를 베푸소서.

주여, 되갚아주고 싶은 이들에게는 당신의 자비가 미치지 않았으면 하고 잠시나마 바랬던 저에게도 자비를 베푸소서.


성탄 이후 감기를 앓는 동안 입이 써서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았다. 마신다 해도 믹스 커피만 당길 뿐, 눈 앞에 Blue Bottle이 있는데도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어제 저녁 겨우 이제 커피를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교중미사를 준비한 후 잠시 수녀원에 들어와 커피를 내렸다. 그리곤 어제 방송했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커피를 마시면서. 오랜 만에 향긋한 커피향이 느껴진다 싶더니 1분도 지나지 않아 식도 끝까지 쓴맛이 내려갔다.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끝맛까지 쓰다. 지금도 입안에 남아 있는 쓴맛을 억지로 침 삼켜가며 목 뒤로 넘기면서 글을 쓴다.


어제도 많은 이가 광화문을 찾았다고 한다. 줄지어 놓여 있던 304 개의 구명조끼 사진을 보자마자 눈물이 또 쏟아졌다. 1000일이라는 시간이 흐르지 않고 멈춰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전후의 시간을 함께 견디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누군가에겐 작년인지 제작년인지조차 헷갈렸던 그날이 내겐 아직도 선명하고 그날 이후 일주일 넘도록 나는 그냥 물은 마시지 못했다. 맑은 물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차마 못할 일을 하는 것 같은 죄책감과 우울함을 겪었다. 


304개의 구명조끼 사진을 보며 304명의 사라진 미래와 유린 당한 유가족들의 미래와 늘 한 켠이 아프고 미안한 수많은 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던 요 며칠. 그리고 오늘은 그알실에서 괴물처럼 변해버린 사람들을 보았다. 더 이상 사랑에 요동치고 연민으로 통증을 느끼며 미움으로 차갑게 식기도 하는 심장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 기계처럼 뛰는 심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난, 나를 포함하여 발품 팔아 찾았건 마음으로 함께 했건 광화문을 찾았던 모든 이들이 박근혜와 정부 세력만 바꾸는 것에서 그치지 않길 바란다. 자신의 상승만을 꿈꾸며 타인의 추락을 방관했던 과거를, 공부와 합격만을 목표에 두고 달리면서 더 귀한 가치들을 무시했던 과거를, 사람되는 아픔을 거부하고 댓가 없는 땀방울을 천대했던 과거를 부끄러워하며 자신의 남은 시간도 바꾸어 가길 바란다. 


어떤 이들은 

작은 거짓말이 대수롭지 않았던 시절,

남의 아픔을 눈감는 자신에 대해 너그러웠던 시절, 시험 잘치고 나면 대학에 가고 나면 하리라 하며 사람되기를 미루었던 시절, 

남보다 내가 먼저여야 함이 크게 부끄럽지 않다고 여겼던 시절을 거쳐 괴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