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부르심따라

내 삶을 생각했다

하나 뿐인 마음 2016. 10. 30. 23:21


보통 9시 미사를 마치면 10시가 조금 넘는다. 내일 미사를 준비하고 복도에 널린 주보와 봉헌봉투 등을 정리하고 복도와 화장실 불을 확인한 후 빨래할 것과 재활용할 종이, 미사책 등을 들고 텅빈 성당을 둘러본 후 마무리가 되면 얼른 반대편 수녀원 건물로 건너간다.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종일 성당 구석구석을 오가다가 밤 10시가 넘으면 녹초가 되어 얼른 수녀원에 들어가 씻고 발을 뻗고 싶어 마지막은 늘 조금 서두르게 되는데, 이게 나의 주일 마지막 모습이다.


오늘도 어김 없이 정리를 마치고 수녀원 건물로 건너가려고 성당에 들어서는데 어떤 자매님이 제일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낮이라면 기도하시나보다 하고 지나쳤겠지만 밤시간은 곧 세콤이 걸린다. 세 개의 건물이 이어진 4층 건물 안에선 세콤을 풀지 않고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런데 이 시간에 자매님이 성체 앞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조심스럽게 "죄송하지만, 누굴 기다리시나요?"하고 여쭸다. 신자라면 이 시간에 문을 닫는다는 걸 알테고 내가 말을 걸면 이제 떠나야 한다는 걸 알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 자매님은 속이 답답해서 왔다며 기도라도 하겠다고 했다. 내가 조금 망설이자 "가야지요."하면서 가방을 집어 들다가, "수녀님을 만났으니 하느님을 만난 거지요."하시는 게 아닌가. 이대로 보내선 안되겠다 싶어 "답답한 일이 있으셨나 봐요."하고 말을 건네자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쏟아냈다. 새로 잡은 직장에서 언니들의 따돌림에 괴롭고, 하도 속이 상해 한바탕 했다가 점장한테까지 들통나고, 둘이 해야하는 일을 신입이라 혼자 다 해야하고 남보다 늦게 퇴근해야 하는데 이제 사장까지 한바탕 한 일을 알게 됐다며,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이라고 하셨다.


자식 얘기, 먼저 떠나보낸 남편 얘기, 꿈 얘기... 자매님은 성당에 다니시는 것도 아니고 불교 신자이신데 답답해서 여기라도 가서 물어야겠다고 찾아오셨단다. 그만둬야할까 하는 질문에 섣불리 그만두지 마시고 익숙해질 때까지 좀 참아보시는 건 어떠냐, 억울해서 언니들이랑 따진 건 잘했냐는 질문에 억울하면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감정적으로 소리지르면 흥분해서 전달이 잘 안될테니 억울한 일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미리 공책에라도 적어서 잘 외워서 또박또박 전달하시라, 꿈에 성당에 다녀야 자식들이 잘 풀린다는데 성당에 와야겠냐는 질문엔 뭐든지 때가 있고 성당은 문이 활짝 열려 있으니 또 오시고 싶은 마음이 들고 하느님 따라 잘 살아봐야겠다 생각이 들면 언제라도 오시라, 언니들은 어떻게 대할까, 점장에겐 뭐라고 할까... 마치 초등학생 아이들처럼 내게 하나하나 묻고 확인하고 다짐을 받으셨다. 자매님은 예순 전후로 보이시던데, 어린아이처럼 나를 쳐다보시며 편들어 달라 조르는 아이처럼 묻고 또 물으셨지.


결국 성당불이 꺼지고 세콤 세팅하는 소리가 들려 결국은 일어서야 했다. 엘리베이터에 타면서도 자매님은 또 물으셨다. 그래도 그만두지 말고 다녀야겠지부터 시작해서... 어차피 세팅을 해제해야 해서 1층 문까지 함께 가야했지만 나란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답답한 일 없는 게 제일 좋겠지만 힘들고 어려우면 언제라도 오시라고, 교리를 받아도 좋고 안받아도 좋으니 마음이 풀릴 때까지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배웅했다. 내게도 새벽부터 일어나 10시 넘어 퇴근해야하는 이 삶이 이리도 고단하고 가끔은 울적해지기도 한데, 자매님은 얼마나 더 힘드실까 싶었다. 난 일주일에 한두 번만 고단하고 나머진 그래도 어떻게든 여유를 스스로 찾을 수라도 있지 싶어 미안하기도 하고. 유리문이 철컥 닫히는데 자매님이 또 한 번 뒤돌아보시면서 당신이 옳은 선택을 했다는 확신을 내게 다짐을 받아내듯 받아내려고 하셨다. 성당에서 자매님 팔을 쓸어내리면 드렸던 대답을 또 해드렸다. "그럼요! 그럼요!"


답답한 날 또 성당을 찾아오시길, 우연처럼 그 때도 나와 마주치시길, 뒤돌아 서서 수녀원으로 돌아오며 내 삶을 생각했다. 오늘 밤은 자매님을 위해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