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부르심따라

에스델 수녀님

하나 뿐인 마음 2016. 9. 18. 11:37


명절이라고 들어온 과일이랑 고기 등을 할머니 수녀님들 모여 사시는 수녀원에 드리려고 갔었다. 차를 몰고 간 김에 여유가 있어 본원에 들렀더니 20년 넘게 암투병하셨던 에스델 수녀님께서 치료를 다 놓으시고 2층으로 옮기셔서 임종을 준비한다고 했다. 수녀님은 누가 봐도 마지막이구나 하는 시간을 보내고 계셨고 잠깐 얼굴을 뵙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그날 밤에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아침에 도착했다.


토요일이라 본당 때문에 갈 수가 없어 하루 종일 틈틈이 수녀님을 기억한다. 함께 살던 때, 비오는 날 부추전을 할까 싶어 시장에서 부추 한 단 사들고 수녀원으로 가는데 맞은편에서 수녀님도 부추 한 단 사들고 오셨던 기억, 햇빛에 그을린 얼굴이 아프다시길래 감자를 갈아서 팩을 해드렸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팩을 하신다길래 웃었던 기억, 대수련 힘들다고 몰래 새벽부터 라면 끓여주셨던 기억... 수녀님은 대축일에 맞춰 돌아가셨고 하늘 나라에서 한국 순교자 대축일 제1저녁기도를 바치셨을 거다. 물론 모든 순교자들이 오랜 세월 투병하시면서 하느님을 섬기셨던 수녀님을 반갑게 맞아주셨겠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할머니 수녀님은 기어코 대구 수녀원에 연도를 가셨다. 표를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역으로 가셨고, 명절 끝이라 표가 없어서 몇 시간씩 기다리시면서 하루의 두 끼를 역에서 우동으로 떼우셨다고 했다. 연도 다녀온 얘기를 하시면서 수녀님은 계속 눈가를 훔치셨고, 죽음이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하시는 동안에도 눈물을 흘리셨다. 할머니껜 15년이나 젊은 후배의 죽음이다.


할머니 수녀님은 우동 먹다가 짐 놔두고 나온 이야기를 웃으며 하시는데도 눈물을 훔치고, '"정신 좀 차리세요." 타박하며 나도 조금 울었다. 그러다가 할머니는 티비를 보시고 난 밥을 먹었다. 삶과 죽음은 이렇게 가깝다. 오늘은 수녀님의 장례일이다. 제의실에선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커피 내릴 때 마지막에 나는 소리처럼 들린다. 수녀님이 땅 위에 계시는 마지막 날이다. 


나도 수녀원에서 살아온 세월이 있어서, 멀리서 얼굴만 뵙던 수녀님들이 돌아가시더니 언젠가부터 함께 보낸 추억이 많은 수녀님들이 돌아가신다. 나도 점점 상주가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