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고든 맥도날드 지음. 홍화옥 옮김. IVP.
해결해야할 문제가 늘 산재해 있다는 건 게으름만의 문제도 아니고 많은 책무 때문만도 아니다. 우선순위로 해결해야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는 뜻이고 나에겐 해결하고픈 의지보다는 외면하고픈 원의가 더 크다는 뜻이리라. R수녀님과 함께 심부름을 갔다가 잠시 들린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둘다 쭈그리고 앉아 이 책을 들여다 보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네."하고선 큰 주저함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저자 서문에서 만난 이 문장, 순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고나 할까, 누군가 내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고나 할까.
그리고 이어지는 가슴을 치는 문장들... 아직 본론은 시작도 되기 전부터 말이다.
우리가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은 천부적인 재능으로 굉장한 조직(교회를 포함한)을 세울 수 있는 지도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바른 말을 하고, 똑똑한 만큼 옳은 일을 하고, 통찰력이 있어서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등 그들은 자신의 내면 세계가 텅 비어 있다는 것을 남이 알아채기도 전에 성공의 길로 한참을 나아갈 수 있다.
재능은 풍부하게 타고났으나 내면 세계는 초라하기 그지없고 영혼이 거의 비어 있는 한 젊은이. 지혜의 샘과 영적인 능력, 그리스도인다운 깊이가 흘러나와야 할 내면은 빈곤에 처한 성공적인 목회자.
내게도 가끔은 나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그분이 나를 통해 하고 계신다'는 체험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그 체험은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앞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 필요했음도 안다. 하지만 내가 받은 재능(이라고 쓰려니 부끄럽긴 하구나)에 기댄 적이 수도 없이 많았음은,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 요즘은 레지오 훈화도, 성경 강의도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둔 나의 글을 의존할 때가 많다. 퍼올리는 양에 비해 조용히 채워나가는 양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럭저럭 괜찮은 수녀의 모습을 하고 있긴 하다. 아직 병세를 드러내지 않아 멀쩡해 보이는 환자처럼.
그는 '쫓겨다니는 경향(drivenness)'를 언급한다. 이 경향은 최선의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로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겠다고 나서는 사람들 속에서 볼 수 있는 특질로 자기만의 스케줄과 전략, 목표와 목적을 가진 인물들이 가지는 공통점이다. 이렇게 쫓겨다니는 사람들은 부름받은 사람들과 대조된다. 무언가에 의해 끊임없이 쫓겨다니는 사람. 해야하는 일, 읽어야 하는 책, 미뤄둔 공부들, 그러면서도 놀고 쉬고 빈둥거림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쫓겨다니는 사람. 고든의 말마따나 "어쩌다가 우리는 스트레스와 피로가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살게 되었는가?" 그리고 어쩌다가 수도자인 나 역시 이렇게 허덕이며 끌려가듯 삶을 살아내고 있는가.
2. 쫓겨다니는 사람은 성취를 표시하는 상징에 집착한다.
3. 쫓겨다니는 사람은 보통 고삐 풀린 팽창욕에 사로잡혀 있다.
4. 쫓겨다니는 사람은 온전한 인격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경향이 있다.
... 목표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윤리적 타락도 감수하게 된다. 무서울 정도로 실용주의적인 사람이 되어 버린다.
5. 쫓겨다니는 사람은 대인 관계 기술을 닦는 데 신경쓰지 않는다.
... 쫓겨다니는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희생자의 행렬이 있기 마련이다.
6. 쫓겨다니는 사람은 보통 경쟁심이 강하다.
7. 쫓겨다니는 사람은 화산처럼 격렬한 분노를 품고 있다. 그래서 반대나 불충성을 감지할 경우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다.
8. 쫓겨다니는 사람은 대개 비정상적으로 바쁘고, 노는 것을 싫어하고, 영적인 예배를 피한다.
... 바쁜 사람이라는 평판이야말로 성공의 상징이자 중요 인사임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너무 많은 책임에 '매여' 있으며 조금이라도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신음하면서 심한 자기 연민을 표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바쁘다고 투정하면서 동정을 받기를 즐기면서도 변화되기를 원치 않는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님을 안다는 말과 내 자신이 하고 있지 않음을 솔직히 시인하는 말 사이에는 엄청한 간극이 존재한다. 예전 수련소 시절, 오랜만에 재교육 30일 피정을 들어와 펑펑 울고 맑은 얼굴을 되찾아가시는 수녀님들을 보면서 의아했던 것도 사실이다. 유기서원자가 되어 한 달에 한번 가지는 모임에서 '잃어가고 있다'는 다른 젊은 혹은 또래 수녀님들의 나누기를 들으면 더 의아했던 것도 사실이다. 부끄럽게도 '저러면 안되는 거 아닌가'라는 단죄성 의문이 내 안에 분명 있었다. 그 의문의 어두움만큼 나는 기도하며, 말씀에 의지하며 살리라 자신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허덕이며 쫓기고 있다.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도 못하겠다. 오늘도 뒤돌아서며 "사춘기인가봐요"했지만, 가장 먼저 손을 써야하는 부분이 어디인지는 내가 잘 알고 있다. 고해성사부터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