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 이야기
이 아이는 백구입니다. 산책을 하다보면 늘 이렇게 불쌍한 얼굴로, 앙상한 몸의 백구가 맥없이 앉아 있었지요. 한 번도 짖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눈이 보이지 않는가 싶을 정도로 몇 번의 인사나 손짓 눈짓에도 반응하지 않았었는데... 어느날부터 내가 "백구야"하고 부르면 스르륵 일어나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걸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꼬리를 흔들거나 눈을 맞추진 않았지만 스스륵 다가와 저렇게 대문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었지요. 처음엔 조금 겁이 나기도 했지만 등을 몇번 쓰다듬어주고 전 다시 산책을 이어갔고, 아마 백구도 다시 시무룩한 표정 그대로 마당 어느 구석으로 돌아갔겠지요. 무료하기 짝이 없는 시간을, 저렇게 일년 열두 달 갇힌 채로 오랫 동안 살아온 백구의 표정은 슬픔도 애닲음도 아닌 차라리 달관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오늘은 이렇게 나를 쳐다봐 주었습니다. 이 정도로 눈익혔으면 이젠, 산책 길에 혹시나 먹을까 싶어 준비했던 강아지 비스켓(그루밍 하는 청년한테 샘플로 받은 애견용 간식을 미리 얻어다 두고)을 줘도 되겠다 싶었지요. 딱히 반기지는 않았지만 잠시 멈칫하더니 조용히 비스켓을 먹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옆으로 서서 가만히 대문에 기대길래 이름을 부르며 몇번 쓰다듬어 주고 돌아왔습니다. 오랫동안 있는 둥 없는 둥 살아야 했기에 이젠 자기가 세상을 있는 둥 없는 둥 여기며 쓸쓸함을 애써 잊으려 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 볼 때마다 괜히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아팠는데, 마지못해 고개를 든 저 힘없는 눈빛을 보고 나니 더 애처롭습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더 자주 만나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