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부르심따라

서러운 마음으로도 기도할 수 있으니까

하나 뿐인 마음 2015. 8. 21. 14:18


할머니가 미사 때 영성체하러 나오셨다가 넘어지셨다. 다행히 할아버지가 뒤에 계셔 큰 일은 없었지만 얼마나 놀랬는지. 이미 한 번의 중풍을 겪어낸 할머니는 혼자서는 잘 걷지도 못하시는데, 꼬박꼬박 성당을 나오시는 분. 크게 넘어지셨다길래 미사 마치자마자 후다닥 달려나가 괜찮으신가 여쭤봤다. 할머니는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연신 괜찮다고만 하셨다. 괜찮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아 바로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 "괜찮아요, 고마워요."만 반복하셨다. 


늘 곱게 차려입고 화장까지 하고 오시는 할머니시라 오늘도 어김없이 화장을 하셨는데 마스카라가 번졌는데도 별 반응 없는 얼굴 근육을 애써 움직이시며 웃어 보이려고 하셨다. 우리 엄마가 살아 있었다면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렁그렁한 눈물에서 아픔보다 서러움이 읽혔다. 할머니의 서러움인지 나의 서러움인지... 약해져가는 자신에 대한 서러움, 세월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고달픈 노년을 견뎌야 하는 서러움. 함께 늙어가지만 오늘만큼은 혼자서 넘어졌다는 서러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통을 받아 안고 있음을 혼자만 느껴야 하는 서러움, 자꾸만 비켜가는 젊음을 속수무책으로 보내야만 하는 서러움... 더 젊다는 이유 만으로 한없이 미안해지는 마음에 돌아서긴 했는데, 나마저 서러웠다. 


저녁이 되었는데도 마음 한 구석이 여전히 허전해, 노을이라도 봐야겠다 싶어 하늘을 보러 나왔는데 하늘마저 어느덧 밤이었다.

채 붙들지 못한 저녁은 어느새 사라지고 밤을 맞이한 기분이란...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서러운 마음으로도 기도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