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6,41-51 예수님 곁에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도록 (나해 연중 제19주일 레지오 훈화)
흥미롭게 읽은 책 중에 ‘기생(寄生)’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기생하다’는 말은 ‘서로 다른 종류의 생물이 함께 생활하며, 한쪽이 이익을 얻고 다른 쪽이 해를 입다.’는 뜻이지요. 기생이나 기생충에 대한 아주 편협한 지식만 가지고 있던 제게 이 책은 어마어마한 세상을 열어 보여 주었습니다. 기생충은 숙주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데, 숙주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도 많지만 어떤 경우, 기생충과 숙주는 진화를 거듭해가면서 서로의 공생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기생하는 생물 중 따개비는 게의 다리 부분에 붙어서 몸속으로 침투하여 그 안에서 살아가며 숙주인 게의 성별까지 바꿔가면서 몸 안에 알을 낳고 살아갑니다. 따개비가 일단 몸에 들어와 기생하기 시작한 게는 그때부터 서서히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려가면서까지 따개비를 먹이고 키우며 따개비의 알까지 돌봐주고 탄생을 위해 헌신한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서서히 자신을 다 내어주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빵이라 하시면 우리들에게 먹으라 하십니다. 사실 게는 스스로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지만 따개비는 그럴 수 없습니다. 숙주인 게가 없으면 자신의 삶을 더 이상 연장할 수 없는 따개비처럼, 우리 역시 예수님이 없으면 아무리 열심이라도 삶을 완성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묵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완전하시고 충만하신 분이기시에 굳이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실 필요가 없는데 오롯이 우리를 위해 신이라는 정체성마저 내려놓으시고 인간이 되셔서 우리들을 먹이고 키우며 당신 자신을 내어주셨음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본당 소임을 하는 저는 종종 기도 중에 굳이 들이는 정성의 힘을 묵상해보곤 합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었던 때도 있었지만, 굳이 들이는 정성이 우리를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는 수도 공동체 생활을 통해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또한 성당 공동체도 그랬습니다. 내 책임도 아닌 일을, 묵묵하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굳이 자신의 일처럼 정성들여 하시는 분들 덕에 성당은 잘 굴러갑니다.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내어주시고 스스로 인간이 되신 예수님 곁에, 따개비처럼 예수님 곁에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한 주간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