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5,1-8 예수님 안에서 '너희'로 살아가기(나해 부활 제5주일 레지오 훈화)
열매와 꽃은 가지 끝에 달립니다. 그렇다면 크고 싱싱한 열매를 맺는 것, 예쁜 꽃을 피우는 것은 나무일까요, 가지일까요? 좀 바꾸어 다시 질문을 해본다면, 내가 맺는 열매나 내가 피워낸 꽃은 나만의 것일까요?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참포도나무요 아버지는 농부이시며 우리들은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혹 우리가 맺는 열매와 피우는 꽃을 나의 공이라 여긴 적은 없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물론 내가 이루어낸 많은 일들이 나의 노력과 희생의 결과물인 건 분명하지요. 하지만 고스란히 나만의 것이라고 하기엔 나를 도와준 사람들과 나의 환경과 타고난 조건들을 잊어버릴 수는 없지요.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갈 순 없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곧잘, (가지인) 나의 끝에 달렸다고 해서 그 열매를, 그 꽃을 내 것인양 생각하곤 합니다.
이 말씀은 더불어, 혹 우리가 상대방이 맺은 열매와 꽃으로만 그 사람을 인정하는 건 아닌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열매만으로 평가되는 세상을 개탄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열매와 꽃으로만 나무를, 사람을 알아보며 살았던 건 아닌지. 나무의 시작은 어미 나무요, 작은 씨앗이요, 흙에 파묻힌 뿌리임을 종종 잊고서 살아가는건 아닌지...
살다보니, '하나'처럼 살아가진 못했어도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매번 실감하게 됩니다. 세상이 불행하면 나의 행복도 온전할 수 없고, 나의 불행 역시 타인의 위로와 도움으로 조금씩 누그러지니까요. 하지만 '함께' 살아가야하는 '우리'임을 잊고 살아가는 시간만큼 우리는 상처 입고 불행해집니다. 오직 나만을 위해 죽자사자 열심히 달렸는데 결승점에 나 홀로 도달하여 아무도 없는 시상대 앞에서 서성여 본들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저 멀리 서로 함께 달리던 이들이 승부의 무의미를 깨닫고 서로 어깨동무해가며 돌아가는 뒷모습이라도 보게 된다면, 그 허전함과 쓸씀함은 결국 제가 자청한 것이겠지요.우리는 예수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그게 '사는' 길이지요.
이렇게 살아갈 때 예수님의 이 말씀을 우리는 좀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이 짧은 문장 안에 '너희'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알고 계셨나요? 예수님 안에 머무르는 '너희'로 한 주간 잘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