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ta contemplativa
피정날 아침
하나 뿐인 마음
2015. 4. 15. 03:30
그러고보니 정말 딱 십년 전의 일이었다.
제의방에서 연세 지긋하신 어느 형제님의 질문, "수녀님은 아주 힘드실 때 어떻게 하십니까?"
십년 전의 나는 지난한 시간을 관통해야할 때 어떻게 지나갔던가, 아니 견디었던가.
그때 나는 "전 힘든 시간이 올 때 저의 '첫서원' 리포트를 다시 들여다 봅니다."라고 대답했고,
그 형제님은 "초심을 생각한다는 뜻이지요?"라 되물으셨었다.
내가 걸으려던 그 삶을 다시 생각하며 흔들리더라도 길을 잃지 않기 위함이었다.
며칠 전 보좌신부님이 물었다, "수녀님들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말하고 싶을 때 어떡하나요?"
" ... "
살아보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인간적인 뾰족한 답이 없음을 우린 알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의학적?) 답안과 우리의 삶이 요구하는 답안이 방향은 같되 평행선처럼 절대 가까워지지도,
더이상 멀어지지도 않고 한없이 나아가기만 할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고 또 내 얼마나 많을텐가.
피정 자료에 나온 "수도승 신분은 단일한 시선, 단일한 갈망을 지니고 타인에게 흘러 넘치는 사랑을 지닌 사람"(허성석 신부, '수도승영성')이라는 글을 읽으며 십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가만히 견주어 본다.
부활 대축일 성야 미사 때 강론,
"무엇을 걸고 신앙인이 되려고 하셨습니까? 신부나 수녀들은 외로움을 걸고 이 삶을 살아갑니다."도 떠오른다.
내가 걸어야 하는 것, 내가 가져야 하는 오로지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