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ta contemplativa

나는 무뚝뚝한 여자아이였다

하나 뿐인 마음 2014. 10. 9. 09:05



 무뚝뚝한 여자아이였다. 지금까지 후회로 남아 있는 기억 중 하나가 중학생이 된 어느 날 엄마가 툭 던진 이 말이다. "나는 니가 국민학교에 들어가면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나 친구들 이야기, 선생님 이야기를 집에 와서 말해줄 줄 알았다."


뭐라고 대답했는지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 실제로 소리내어 말했는지, 혼잣말로 중얼거렸는지, 아니면 당시엔 대답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마음 속에만 맴도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내 대답은, "진작 말해주지."였다. 그러나 정말 엄마가 진작에 말해줬더라면, 나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전해주는 '상냥한' 여자아이가 될 수 있었을까? ...


난 엄마의 이 말을 마흔이 넘어서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엄마는 더 이상 말은 안했지만 서운함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엄마도 알았을 것이다, 십 년 넘게 기른 딸내미 본성을 바꾸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란 걸. 엄마가 죽기 전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병원에서건 집에서건 난 그리 상냥하진 못했다. 엄마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대학교라는 곳을 다니면서도 난 여전히 말을 아꼈다. 면접을 치르던 날도 학교 한 번 가보고 싶어하는 엄마를 버스가 복잡하다는 이유를 들며 결국은 그리 멀지도 않는 학교에서 기어이 만나지 않고 시내 제일서적으로 약속을 잡았다. 옷을 사주고 가방을 사주고 귀까지 뚫어주며 엄마는 온몸으로 내게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무뚝뚝했다. 일부러 말을 안한 것도 아니었고 감출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닌, 그냥 정성이 조금 부족한 철없는 딸내미에 불과했다고 한다면 자기합리화일까.


살면서 나는 말을 아끼는 '천성' 때문에 곤혹을 치르곤 한다. 과거에 비해 나는 말이 많아졌고 웃음도 많고 사람들과도 가까이 잘 지내는 편이지만, 불필요한 말의 범위에 들어가는 이야기들이 여전히 많다. 물론 나의 기준이고 타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사는 게 힘들다. 가장 힘든 때는 ...


엄마는 서운해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속인다'(침묵=숨김=거짓)로까지 판단이 뻗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때다. 단순히 가족이냐 아니냐의 문제만은 아니겠지만, 나의 순수한? 입장을 몰라준다 싶어 답답하고 화도 나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타인에 대한 '신뢰'가 어디까지 인지를 생각하며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내가 남을 믿어줄 때는 과연 어떤 마음인가. 본성이라 여기는가, 의문 투성이의 합리화라고 생각하며 바라보는가. 무조건적 신뢰가 언제나 필요하다는 말도 아니고, 언제나 옳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타인을 대하는 나의 자세를 다시 성찰하겠다는 말이다. 지나치게 짐작하여 상황을 내몰아가지 않을 수만 있어도 얼마나 다행인가.


마루 바닥을 뚫고 올라온 생명이 귀해 보인다. 누구에게는 잘못 뿌리내렸다고 판단될 수도 있겠지만, 제딴에는 얼마나 부대끼며 자라났을까. 나만이라도 고생하며 뿌리내리고 자라나려는 마음을 알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