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ta contemplativa

그 사람이 당신이라면 어쩌시겠습니까

하나 뿐인 마음 2014. 3. 21. 01:16

 

 

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매번 수녀들만으로 공동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주어진 소임에 따라

사제들과 공동체를 이루기도 하고, 평신도들 혹은 믿지 않는 이들과도 공동체를 이루기도 하며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수 년간 서로 닦여가며 자연스레 형성되는 공동체가 아닌 경우가 많고단순 이익에 따라 모이진 않았다 해도 짧게는 2-3년 주기로 자의반 타의반 모였다 헤어질 수도 있는 관계이니

한 공동체 안에서도 마음(요샛말로 코드)이 쉽사리 만나지지 않는 사람도 있고,

무조건 양보하며 이해하고 사랑하기엔 서로가 지극히 '인간적'일 수 있는데...

그러기에 더더욱 부대끼는 소리가 요란할 수도 있고,

노력에 들인 공이 무르익기도 전에 다음 공동체로 떠나야하므로 

오히려 마음을 비워 잡다한 사건들에서 자신을 초월할 수도 있다 싶지만

성급한 마무리를 하느라 관계의 잡음이 더 크게 잦을 수도 있다.

어쨌건 우리들은 자신의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하느님 뜻대로 살고자 마음 먹고 

성찰하고 기도하며 이렇게 저렇게 살아간다.

 

무엇보다 수도삶의 궤적이 길어질수록,

죽을만큼 사람을 미워하는 것보다 힘든 것이 없다는 것도 서서히 알아채고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보다 더 큰 아픔을 지녔다는 것도 경험으로 깨닫게 되고사랑과 관심, 위로만큼은 받지 않으면 아무리 애써도 마음 먹는만큼 주기가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된다.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안아줄 수 있다는 것도,내가 약하고 아프고 외롭고 못났음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미워하는 것보다 용서하는 것이 수십 배 어려워도 수천 배 수만 배 값어치 있는 일이라는 것도,명백히 잘못한 사람을 판단하고 욕하긴 쉬워도이미 판단하고 미워하고 욕을 한 순간부터그 사람과 내가 결국 같은 부류의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것마저도... 알게 된다.

씁쓸한 인생의 맛을 곱씹으며 비로소 가공되지 않은 인생의 참맛을 느껴간다고나 할까.

 

언젠가 공동체의 쇄신을 주제로 수도회 회원 모두가 한 곳에 모여 진지하게 피정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이전에 충분히 기도하고 피정을 한 상태이긴 했지만어떤 멤버로 구성된 공동체이건 간에 거의 폭탄 수준의 발언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두고 우리들은 더욱 진지해졌었다.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우리 각자를 너무나 고달프게 만드는 고민 중의 고민이었으니심정부터 해결방안까지 의견이 그야말로 '분분'했었다.더 잘해주자, 건드리지 않는게 낫다, 치료 영역일 수도 있다, 시간을 두고 참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두를 위해선 아무리 어려워도 그 사람에게 정확한 사실을 말해야 한다,,,,,,,,,,,,수많은 말이 오간 후 여러 차례의 기도와 나눔을 통해 각 그룹에서 결론을 지어갈 무렵 

새 질문이 당도했다.

 

"그 사람이 수녀님이시라면 어쩌시겠습니까?"

 

너나 할 것 없이 깊은 침묵을 지키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가 조심스레 내놓은 대답은 놀랍게도 하나였다.

400여 명의 수녀들이 내놓은 오직 하나의 대답!
"그 사람이 나라면 그로 인한 고통은 잠시 잊어주시고 저에게 꼭 알려주십시오."

만약 

공동체 안에서 의도의 유무와 관계없이 분란을 일으키고, 정의의 이름으로 비과 미움을 쉽게 선택하고,

자신의 지난 아픔으로 인해 과민하게 반응하거나 판단이 흐려지고,

타인이 여간해 건드릴 수 없을만큼 날이 선 상태가 일상인 사람이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면...

 

아무리 내가 못되게 굴고, 건드릴 수 없을 만큼 예민하고,

타인의 말을 듣고 수용할 수 없을만큼 나 자신의 아픔에 빠져있다해도

그게 나라면, '제발 나에게 알려 주십시오'.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지난 시간보다 더한 고통이 나를 덮칠 수도, 

부끄러움와 민망함이 나를 삼킬 수도,

더 이상 공동체 앞에 나설 수 없을만큼 절망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게 나라면, '제발 나에게 알려 주십시오'.

 

어떠한 고통이 나를 기다린다 해도, '나에게 알려 주십시오'. 이겨내겠습니다...

설령 이겨내지 못한다 해도 '제가 제 자신을 알도록 해주십시오'.

 

살다보면 문득 문득 그 때의 그 결론이 생각난다.

우리 모두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였던 그 때의 그 결론.

그때는 우리 공동체가 온전히 하나되어 고요히 낮아진 때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