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ta contemplativa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을 추억하며...

하나 뿐인 마음 2013. 11. 16. 10:11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시성을 앞두고 어르신들과 다큐멘터리를 본 후 소감을 정리해 봐야겠다 싶어서 몇 자 적어보기로 함.

 


그의 유년시절은 외롭고 슬펐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형님도 일찍 생을 마감하여 아버지와 단 둘이서 살았으며 가난한 살림살이였다. 외로움과 가난뿐만이 아니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던 그 시대를 관통하여 살고 있었다. 전쟁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 척박한 땅에서 온 힘을 다해 뿌리를 내리는 삶이었다.

 

그는 또한 장래 유망한 연극인이기도 했는데 억압의 시절, 비폭력 저항으로 문화 혁명을 꿈꾸었으며 또 다른 순교의 시대에 결국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다. 사제가 되기 위해 그는 비밀리에 지하에서 교육을 받아야 했는데 당시 사제가 되려는 신학생들끼리도 서로를 알지 못했다. 혹시나 고문을 받다가 발설할 위험 때문이었는데, 사제로서 순교를 마다하지 않는 것도 인간으로서 쉬운 결정이 아닐 텐데 순교의 길임을 알면서도 사제의 길을 결심하는 마음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가 방탄 유리를 걷어치우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던 것 역시 이미 죽음을 개의치 않음일 것이다. 그는 이후 자신을 저격한 사형수를 만나서 용서와 화해를 했다. 하늘이 무섭지 않으신 분이니 죽음이 두려울 리 만무하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우리나라 가톨릭 교회 역사에도 큰 획을 그으신 분이시다. 1984년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103명이나 되는 순교자를 한꺼번에 시성을 하신 분이다. 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세계 평화를 위해 끊임없이 순례를 떠났던 교황님답게 교회 명분으로는 200주년 및 시성식이었지만 그의 또다른 방한 목적은 광주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환대를 받으며 교황님이 건네신 말은 현대의 가장 큰 죄악은 죄악감의 상실이었다. 누구라도 알아들었을 그 말은 오직 한 사람은 알아듣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교황님은 서둘러 광주를 향했으며 한국사 뿐만 아니라 인류사에 씻지 못할 오명을 남긴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견제를 분명히 드러냈다. 또한 예고 없이 가장 소외된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갑작스런 요구를 함으로써 소록도를 방문, 나환자들에게 일일이 손을 얹어 안수를 하며 축복을 빌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사족이 있다. 1984년 교황님이 대구 계산성당을 방문하실 때 나도 환영인파의 하나였다. 성당에서 차출?되어 촌스러운 한복을 갖춰 입고 계산 성당에서 교황님을 기다렸다. 그때도 역시 나는 그리 활발한 인간이 못되어 멀뚱하니 서 있다가 교황님이 제대를 항해 입당하시는 행렬이 시작됨과 동시에 모든 어린이들이 앞으로 손을 뻗으며 나서는 그 순간, 붙박이처럼 가만히 서 있고 말았다. 계산 성당 성전 안에서 엄청난 고함소리와 완력에 패배한 유일한 1. 혼자만 정지상태였던 나를 향해 지나가시던 교황님이 아주 잠깐 손을 얹어주시긴 했는데 숫기 없는 동양 어린이에 대한 교황님의 배려는 찰나에 불과했다. ㅎㅎ

 

 

사족의 또 하나는 ... 당시 성당에 다니던 사람들은 200주년 미사보 같은 기념품들을 너도 나도 들고 다녔는데 학생들에게는 교황님 책받침이 인기였다. 커다란 교황님 얼굴이 앞면이고 뒷면 가득 글자가 있었는데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으로선 기억나는 게 없다.  어쩌면 너무 길어서 그 지루한 글을 읽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재밌었던 것은 어쨌건 별로 눈에 띄는 애도 아니었던 내가 교황님의 어린이 환영단에 뽑혔다는 것이 친척들 사이에서는 약간 이슈였었다는 사실이다뽑힌 이유는 나도 아직까지 모른다. 여튼 나는 약간 으쓱할 수 있는 처지가 되었는데 글을 모르던 사촌동생은 그게 무척이나 신기했었는지 책받침에 뭐라고 쓰여져 있는지도 궁금했나 보다. 나한테 물어봤다면 자랑도 할겸 해서 그 글을 끝까지 읽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그 녀석은 제 엄마인 이모한테 물었었고 이모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 책받침 뒤에는 교황님께서 희경이 누나에게 안수와 뽀뽀까지 해줬다는 내용이 적혀있다고 ... 희대의 뻥을 치셨고, 이모의 진의를 알아차리느라 혼이 빠졌던 나는 그게 거짓말이라고도 말하지 못했음과 동시에 더 이상 사촌 동생에게 으쓱하며 잘난 척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연예인 병은 일주일도 채 못가서 끝나고 말았고... 비닐이 벗겨져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교황님 얼굴을 종이 사이에 끼워서 벅벅 글자를 써대며 불경죄만 저질렀다는 흑역사가 전해져 온다, 내 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