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 갱신
2006.8.14.
어디론가 훌쩍 떠나 훨훨 털어버리고 싶은 나날들의 반복...
그렇게 여행을 떠나듯 훌쩍 피정을 다녀왔다.
그렇게도 중요하다는 갱신 피정임에도 불구하고 별 준비도 없이 대충 싸들고 그렇게 훌쩍..
좀 잊고 털어내고 싶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었던 시간.. 이 핑계를 대면서 이틀내내 잠만 잤다. 너무나 더워서 수시로 깨어나야 했지만 기를 쓰고 땀 뻘뻘 흘리며 자고 또 잤다.
서원 갱신.
난 오늘 서원갱신을 했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16,21-27이었다. 첫번째 수난예고에 관한 복음. 이 복음은 변모축일 때문에 읽었고 며칠전 복음이라 읽었고 갱신 미사 복음이라 또 읽었다...3번에 걸쳐 예고하신 수난...그 첫번째 예고를 나는 3번에 걸쳐서 읽었다, 아니, 들었다.
서원 갱신하기 전날 밤... 복음묵상을 하며... 갱신 미사 때 예수님께서 당신 수난에 대해 예고하신 복음을 듣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봤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 주셨다...
서원갱신은 그랬다. 화려한 성당 꽃꽂이도 없었고, 장궤틀에 하얀 보를 씌워주지도 않았고, 서원장 마저도 아무 그림도 없는 그야말로 백지였다. 서원갱신을 하고 나서 수건 모양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수도복에 뭔가 하나 덧입게 되는 것도 아니고,하다못해 은반지라도 하나가 손가락에 끼워지는 것도 아니다. 미사중에 감격스런 평화의 인사도 없고 그 흔한 사진 한장도 찍지 않았다. 서원갱신은 그랬다. 겉으론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원갱신을 했다. 제대 앞에서, 하느님과 성인들 앞에서 서원장을 낭독했다. 그리고 제대 위에 올라가 서명을 한 후 서원장을 십자가 옆에 봉헌했다. 그리고 제대 앞에 엎드려 두손을 가슴에 포개고 노래했다. 첫서원 때보다 더 분명한 목소리로, 더 결연한 의지로.
"주님, 주님께서는 저를 받으소서.
그러면 저는 살겠나이다.
주님은 저의 희망을 어긋나게 하지 마소서."
이런대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가. 그제서야 내 안에 울리는 조용한 목소리. 서원하고 살아온 2년의 세월. 기쁨보다 어쩌면 더 컸던 슬픔과 고통의 시간을 알면서도 또다시 서원장을 들고 제대앞에 섰다면. 오늘은 겉이 아니라 속이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 그 누구도 모르지만 한분만 아시는 속마음이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