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食性 人間

전태일 평전

하나 뿐인 마음 2013. 6. 18. 06:17

사랑도 시기가 맞아야 한다던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


몇번이나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의무에 가까운 책임감을 느꼈지만 내 삶이 너무 버거워서 이 책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세상이 내게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던 나의 이십대, 나는 눈앞에 닥친 내 슬픔 말고는 그 어떤 의미도, 명분도 가질 수 없었던 시절로부터 이십년이 지나 몇 번의 기회를 놓쳐가며 이제야 이 책을 읽었다.


내 삶이 누구보다 힘들었다고는 말 못하지만, 난 분명 나의 삶은 남을 쳐다볼 여유가 없는 삶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가끔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질문, 진정 그랬던가에 대해 답하는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지지 않는다.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철이 들면 들수록 나는 그래도 무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밥 굶을 일 없이 자라 돈보다는 건강 걱정, 성적 걱정이나 하며 겁없이 일탈을 일삼았다. 하지만 전태일은 나와는 전혀 다르게 인생의 방향을 틀었다. "전태일이 그 지독한 가난과 서러움 속에서도 절망하거나 타락하지 않고 당당하고 정의롭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험난한 생활에서 비롯된 사회개혁의 높은 꿈과 사명감 때문이었다." 그는 "몸이 고된 것 이상으로 그의 마음은 더욱 괴로웠다. 시다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될수록 그의 가슴은 비수에 찔린 듯 아팠고 그의 울분은 치밀어올라 그의 생각은 깊어져갔다." 나는 살아온 시간만큼, 나아가지 못하고 고여있었던 시간만큼 그들에게 부채감을 느끼고 미안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힌 자는 부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가장 청순하고 때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묻고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사회의 현실입니까? 빈부의 법칙입니까? " 그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신의 삶을 통틀어 보여주며 나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듣는 이를 괴롭히려고 하거나 책임추궁을 하며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진실로 궁금했을 것이다. 묻고 또 물어서 답을 들을 수 있다면 그는 죽지 않고 물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세상은 전태일의 눈 앞에서 돌아서지 않았고 "조금만 더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하던 말에 책임을 지게 된다.  "모든 것을 참으로 절실하게 소망하였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끝내 굽히지 않고 다시 일어서 싸웠던" 그에게 "아무리 애써도 바라는 것은 좀처럼 오지 않았고",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는 길을 홀로 떠났다.


나 역시 겟세마니 예수님의 등 뒤에서, 한밤중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채 헤어나지 못한 신새벽 엄마의 병실 한 구석에서, 부모님을 한곳에 묻고 돌아 나오는 길 찬란한 햇빛을 통과하던 자동차 안에서 묻고 또 물었었다. 왜 죽음입니까? 죽음 말고는 정녕 답이 없는 겁니까? 내가 막막했던 그 답답함보다 수천 수백 배는 더 어둡고 높고 질긴 의문이 그를 짧은 인생 내내 짓눌렀겠지. 그에게 허락된 세상만큼 그에게 의뭉스러운 게 또 있었을까.


"너는 괴롭겠지만 보지 않을 수 없을 걸세."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의도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어야 함을. 전태일이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다는 이 문장은 기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에게, 나아가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를 명중하는 예언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믿겠습니까? 벌레보다 못한 인생이지요. 주인 있는 개보다 천한 인간입니다." 아....


"자신을 억누르고 거부하고 얽어매고 자신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아가려는 저 비정한 사회현실의 힘에 도전하는, 쓰러져도 또다시 일어나 맞서 싸우는, 온몸으로 자신의 인간성과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싸워 찾으려는, 한 약하디약한 밑바닥 인간의 처절한 투쟁의 모습"으로 살다가 거대한 어둠 속에 파묻혀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수많은 동지들의 앞날을 비추기 위해 스스로 불기둥이 되어버린 전태일.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너던 짙은 어둠과 무거운 공포의 밤에 그들을 비추고 보호했던 불기둥처럼, 전태일은 스스로 불기둥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는 말했다.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 문제이다.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대에서 나는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는 숭고했다. 비록 후미진 곳에 아무도 모르게 버려진 듯한 삶을 살았으나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고 비겁하게 고개를 숙이거나 무릎 꿇지도 않았다. "무관심의 벽, 차디찬 상업주의의 벽, 인간을 물질화하는 이 세대의 억압과 침묵의 벽"과 결연하게 맞서서 순결한 제물, 흠없는 제물로 있는자 없는자 모두를 위해 스스로를 바쳤다.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두 갈래의 길 시작에서 머뭇거린다. 내게 무엇이 남았는지 여전히 나는 잘 모르겠다. 아니, 어디로 걸어가야 하는지 모르는 바 아니나 나를 확신한다는 말이 얼마나 무모한 말인지 조금은 인정할 만큼 살았기에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채감을 끝까지 떠안고 가겠다. 내 비겁함을 붙들고 미안한 마음 기워갚기 위해 두 발에 더 힘을 실겠다. 그가 스스로 밝히 비추는 길로 걸어가겠다. 예수께서 그와 같은 길에서 나를 부르고 계시기에.


"그가 태어났을 때 이미 억눌리는 고통에 찬 현실은 존재하고 있었다. 이 현실 속에서 자라면서 그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하여 끌려가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바로 인간이 그것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지 못하게 된다. 이 거대한 힘에 비하여 볼 때 자기 자신은 너무나도 약하고 초라하고 무력한 존재로 느껴진다. 조만간에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현실의 사회구조와 질서 앞에 무조건 머리를 수그리고 거기에 '순응'해야만 생존이 보장된다고 느끼게 되며 따라서 현실 앞에서 위축되고 기가 죽어서 비굴해진다. 현실에 대한 모든 비판은 그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무모한 짓이 되며, 따라서 자신에 대해서는 불성실하게 되고 나중에는 부도덕으로까지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비판정신의 싹을 자신의 의식 속에 싹트기도 전에 잘라버리고, 사회가 강요하는 모든 명령, 모든 가치관, 모든 선전을 무조건 받아들여 '순한 양'이 된다. 자기 머리로 생각할 줄 모르는, 주체성을 빼앗긴 정신적 노예로 길들여진다." - 조영래_




전태일 평전(신판)

저자
조영래 지음
출판사
전태일기념사업회 | 2009-04-1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우리는 전태일을 옳게 읽고 있는가? 2009년 신판 『전태일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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