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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19/11 (14)
깊이에의 강요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8-19) 되갚아주고 싶은 말 한 마디 참아서 생명으로 한 걸음 건너간다. 이걸 알면서도 도저히 못하겠다 싶어, 오늘은 이 묵상을 쓰고 싶지 않아 몇 시간을 버텼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 21,3-4) 내가 가진 렙톤 두 닢이 어쩌면 자존심과 기대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착잡한 하루다. 낮은자는 될 수 있으나 내쳐진 자가 되고 싶지는 않은 나. 상대에 대한 기대감을 끝끝내 놓지 못하는 나. 주말 내내 이 렙톤 두 닢을 헌금함에 던져 넣지 못하고 성전 언저리만 맴돌았다. 지치고 무겁고 피곤하다. 놓았다면, 바쳤다면, 비웠다면... 좀 나았을까. 가벼워졌을까. 아직도 멀었다.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마태 12,47) 남들에게 예수와 가깝다고 여겨지지만(어쩌면 스스로도)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자신이 예수와 가까운지도 모른 채 예수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내 키가 작고, 군중에 가려서 그분을 볼 수 없을 때 그분이 나를 보신다. 나는 어떻게든 그분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려고 했지만 그분은 가까이 부르시며(내려오너라) 내 집에 머무르겠다 하신다.
월요일은 무조건 쉬는 게 제일 좋지만 선교분과 수녀님들과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황새바위 성지 지하무덤. 대전 살 때 몇 번 가본 곳이지만 부활경당은 안가더라도 여긴 다시 가보고 싶었다. 좁고 어두운 공간을 지나면 빛이 가득한 입구가 나오는 이 복도. ㅎㄱ 수녀님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굳이 지켜보고, 나 역시 굳이 다시 걸어봤다. 피곤한 오늘이지만 빛을 향해 난 길이길.
친구들, 지난 한 주간 동안 잘 지냈나요? 지난 주 목요일에는 수능이 있었지요.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수험생들이 무사히 수능을 치고 수고의 열매를 맺은 날이기도 해요. 특히 우리 고3 언니, 형들은 시간을 쪼개어 공부하면서도 미사에도 꼬박꼬박 나와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었지요. 힘들고 어려운 순간도 많았겠지만 또 성실하게 노력한 만큼의 보람도 맛보았을 언니, 형들을 위해 고맙다고 응원의 박수 한 번 쳐줄까요? 오늘 복음은 사람들과 예수님께서 성전을 바라보며 주고받은 대화예요. 아름답게 꾸며진 성전도 결국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거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사람들은 그 일이 언제 일어나는지, 그 일이 일어나려고 할 때 어떤 표징이 나타나는지 물었어요. 예수님께서는 ‘속지 말라’고 하시며 자신이 그리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하느님의 섭리를 내 안에서,타인 안에서 발견하는 삶 자체가 하느님 나라.말없이 믿으며 사랑으로 지켜봐야 가능한 일. 그러니 보아야 보이고, 들어야 들리고, 열어야 열린다. 가까이 있다고 해서 쉬워서도, 가벼워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