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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2023 부활 본문
사순절 동안 성당에 앉아 내내 텅 빈 예수를 응시했었다. 빛이 관통하도록 자신을 온전히 비워 십자가와 하나가 된 예수.
성당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창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성당을 가득 채우는 걸 볼 수 있다. 그 빛은 예수를 그대로 통과하고 빛의 방향에 따라 그림자가 드리워지기도 한다. 이런 날은 예수의 형체가 십자가임이, 십자가여야 함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어떤 날은 빛이 서서히 잦아들고 고요한 어둠이 성당을 채웠다. 그런 날은 십자가와 예수는 어둠 속에서 구별되지 않는, 구별할 필요조차 없는 하나였다.
빛이 나를 관통하도록 온전히 자신을 비워, 빛이 나를 채울 때 내가 누구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는 것. 십자가가 온전히 나의 배경이요, 형체가 되는 것. 부활절 끝기도마저 마친 시간, 혼자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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