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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이름이 같아도 우린 달라 본문
모랙 후드 글, 그림. 고영이 옮김. 사파리.
이 짧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읽으며 오래 전 내가 지인의 꿈에 나타나서 들려주었다는 수도원 이야기가 생각났다. 수도원에는 모두가 하나의 수도명을 갖는데, 모두 세레나. 그래서 수도원에 세레나에게 기쁜 편지가 오면 어떤 세레나에게 온지 몰라서 모두 내 일처럼 기뻐한다고.
세레나는 ‘고요하다’라는 뜻의 세례명이다. serenade는 밤에 연인의 집 창가에서 부르거나 연주하는 노래이다. 고요한 밤, 달빛에 기대어 사랑하는 연인에게 부르는 사랑의 노래. 다른 이는 듣지 못하는, 어쩌다 사랑의 노래를 듣는다 해도 그에겐 의미 없는 멜로디일 뿐.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부르는 한 사람만의 詩. 그러고 보니 우리 수도자들은 모두 하느님 한 분을 위해 살아가는 ‘세레나’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각자 하나의 나무일 때도 있지만 '우리'가 ‘하나’의 나무일 때도 있다. 너와 내가 어우러져 하나의 나무가 된다는 것. 씨앗이든 뿌리이든 잎이든 가지이든 우린 ‘하나의 나무’라는 공동체 의식. 같은 수도명을 갖는다는 말은 어쩌면 이름이 같다는 의미와 함께 우리 모두 ‘수도자’라는 의미도 있으리라 싶다. 개인적으로는 서로 다른 꿈을 꾸기도 하지만 우린 수도자로서 하나의 비전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개인적 꿈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 원초적이며 모든 이유를 능가하는 유일무이한 이유가 바로 ‘수도자’ 즉, 성소(聖召)이다.
하나의 수도명을 갖듯 우리 모두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는 없을까. 보편적 인류애 같은 거창한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가 그저 '인간'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간이라면 당연히 지녀야할 양심을 실천해야하는 존재라는 정도만이라도 우리가 깨달았으면 좋겠다. 물론 보편적 인류애로 누구보다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 나라에도 많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성심으로 온전히 살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온전히 수도자일 때, 죽을 때까지 conversatio morum을 살아낼 때 ‘기쁨’의 수도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하느님 앞에 온전히 성심이자 또한 온전히 수도자이니 내가 나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온전히 수도자로서 살아간다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온전히 수도자일 때 나는 비로소 온전히 성심수녀가 된다.
기억나는 이야기 또 하나. 어릴 적 한 반에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가 많았던 시절, 우리 반에는 '김은주'가 셋이나 되었다. 이름을 불러야 하는 우리들을 큰주, 중주, 작주 이렇게 키로 사람을 구별해서 부르기도 했지만 각자 조금 더 친분이 있는 은주를 부를 땐 그냥 '나의 목소리'로 '은주'를 불렀고, 셋 모두 한 반에 있어도 내가 부르는 은주는 정확하게 나를 돌아다 봤다. 이름이 같아도 우리를 서로를 헷갈리지 않았고, 같은 이름으로 불러도 흔들리지 않았다.
"저기... 스티브, 미안해."
"스티브, 나도 미안해."
"스티브, 이 공 받아. 네가 먼저 굴려."
"스티브,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