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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본문

雜食性 人間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하나 뿐인 마음 2018. 11. 22. 22:44

신형철 지음. 한겨레출판.


이런 생각을 좋아한다. 이렇게 사고하고 이렇게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신형철 평론가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너무 읽고 싶었었다. 곧 좋은 타이밍에 고마운 분으로부터 책을 선물 받았는데, 정작 이 글을 읽는 동안 나는 슬플 일이 많았다. 그래서 틈틈이 읽지 않고, 일부러 시간을 내고 자리를 마련해서 읽었다. 나 혼자 짊어졌다 싶은 슬픔, 서러움, 외로움도 다 삶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읽었다.


내 삶은 대체 얼마나 배워야 할까. 


"건축학을 잘 모르면서도 글짓기는 집짓기와 유사한 것이라 믿고 있다. 지면(紙面)이 곧 지면(地面)이어서, 나는 거기에 글을 짓는다. 건축을 위한 공정 혹은 준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식을 생산해낼 것. 있을 만하고 또 있어야만 하는 건물이 지어져야 한다. 한 편의 글에 그런 자격을 부여해주는 것은 (취향이나 입장이 아니라) 인식이다. 둘째, 정확한 문장을 찾을 것. 건축에 적합한 자재(資財)를 찾듯이, 문장은 쓰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다. 특정한 인식을 가감 없이 실어 나르는 단 하나의 문장이 있다는 플로베르적인 가정을 나는 믿는다. 그런 문장은 한번 쓰이면 다른 문장으로 대체될 수 없다. 셋째, 공학적으로 배치할 것. 필요한 단락의 개수를 계산하고 각 단락에 들어가야 할 내용을 배분한다. 가급적 각 단락의 길이를 똑같이 맞추고 이를 쌓아 올린다. 이 시각적 균형은 사유의 구조적 균형을 반영한다(반영해야 한다). 이제 넘치는 것도 부족한 것도 없다. 한 단락도 더하거나 빼면 이 건축물은 무너진다(무너져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야기하지 않은 고통 앞에서는 울 수 있어도 자신이 야기한 상처 앞에서는 목석같이 굴 것이다.” (사이먼 메이, <사랑의 탄생>)"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위로는 단지 뜨거운 인간애와 따뜻한 제스처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나를 위로할 수는 없다. 더 과감히 말하면, 위로받는다는 것은 이해받는다는 것이고, 이해란 곧 정확한 인식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위로란 곧 인식이며 인식이 곧 위로다. 정확히 인식한 책만 정확히 위로할 수 있다."

"상처와 고통의 양을 저울 위에 올려놓는 일이 비정한 일인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비정한 일은, 네가 아픈 만큼 나도 아프다고, 그러니 누가 더 아프고 덜 아픈지를 따지지 말자고 말하는 일일 것이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덜 아픈 사람이다. 지배하는 사랑과 미성숙한 사랑의 공통점 중 하나는 저울을 사용할 줄 모르거나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데 있다."

"참지 않는 사람들은 늘 안 참고, 참는 사람들은 늘 참는다. 참지 않는 사람들은 못 참겠다고 말하면서 안 참는다. 그들에게는 늘 ‘참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참는 사람들은 그냥 참는다."

"진정한 고통은 침묵의 형식으로 현존한다. 고통스러운 사람은 고통스럽다고 말할 힘이 없을 것이다."

"‘폭력이란? 어떤 사람/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 더 섬세해질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기를 택하는 순간, 타인에 대한 잠재적/현실적 폭력이 시작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내가 타인을 보는 곳 말고 타인이 나를 보는 곳으로 가기, 거기서 내 눈을 버리고 타인의 눈을 얻기, 그리고 마침내 그 타인의 눈으로 나를 보게 되기."

"중요한 것은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겠지요. 궁극적으로는 자유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애초에 어떤 얽매임도 없기 때문에 딱히 자유로워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없는 상태 말입니다."

"고통의 공감은 일종의 능력인데, 그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잘 모르는 고통에는 공감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한심한 한계다. 경험한 만큼만, 느껴본 만큼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고통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늘 생각한다. 자의든 타의든 타임의 고통 가까이에 있어본 사람, 많은 고통을 함께 느껴본 사람이 언제 어디서고 타인의 고통에 민감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사랑이다. 그 사랑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 그대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 누구도 감히 하기 힘든 사랑이어야 한다."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강자를 대상으로 할 때에만 풍자다. 그때 그 일은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폭로하는 숭고한 행위가 되기도 한다."

"타인을 조롱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저급한 쾌감이며 거기에 굴복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가장 저열한 존재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일이다. 이 세상에 해도 되는 조롱은 없다."

"‘예술은 현실의 재현’이라는 유서 깊은 논의에서 ‘재현’이란, 현상의 복사가 아니라 본질의 장악이다. 남길 것과 지울 것을 선택하는 지성이 필요한 일이다. 또 독자에게 고통을 전이시켜야 한다. 세상이 고통스럽다고, 고통스럽게 말해야 한다. 그것 없이는 인지의 충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항상 깨어 있는 사람은 ‘깨어남’이라는 사태를 체험할 수 없다는 것. 잠을 잘 수 있고 또 자는 사람만이 깨어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것. 그러므로 이런 역설이 성립한다. ‘항상 깨어 있으면 진정으로 깨어날 수 없다.’"

"진정한 비판은 적의 가장 복잡하고 심오한 부분과 맞서는 일이다. 그럴 때 나의 비판 또한 가장 복잡하고 심오한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말대로 적을 대하는 태도는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돼 있다. 적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적을 사랑하면서 고귀해질 것인가, 적을 조롱하면서 공허해질 것인가."

"어떤 이를 비판할 때 해서는 안 되는 일 중 하나는 상대방을 ‘비판하기 쉬운 존재로 만드는’ 일이다."

"굳이 니체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타인을 부정해야만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삶은 비극적이다. "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은 특별히 노력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반면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은 언제나 생생하고 절박하며 현실적이다. 그래서 대체로 우리는 나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해석한다."

"컴퓨터가 그렇듯이 인간에게도 초기설정이라는 것이 있다.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자기중심적인 본성과 자신이라는 렌즈로 만물을 보며 해석하도록 되어 있는 경향”이 그것."

"느리고 신중한 의견은 이제는 아무도 없는 광장에 너무 늦게 도착한다."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복잡한 것이며 타인의 진실이란 얼마나 섬세한 것인지를 편리하게 망각한 채로 행하는 모든 일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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