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食性 人間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하나 뿐인 마음 2025. 6. 18. 11:12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유왕무 옮김. 이억배 그림. 바다출판사.
 
오랜 만에, 너무도 아껴가며 읽고 싶어서 꾹 참아가며 다음 분량을 남겨둔 채 책을 덮곤 했었다.
읽다가 얼마나 남았나 살펴보고는 다시 앞으로 돌아가 반복해서 읽으며,
다음을 위해서 더 읽고 싶은 마음을 참아가며 읽은 책.
결국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지만
아포르뚜나다를 가만히 안고 있는 소르바스처럼,
내 마음 속에 쑥 들어온 무언가를 한참 품고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삼위일체 대축일을 사이에 두고 책을 읽어서 그런지,
아기 갈매기를 키우는 고양이들의 사랑이 삼위일체의 친교,
서로를 일으켜 온전하게 각자이도록 하면서도 오롯하게 하나인 사랑을 떠올리게 했다.
더불어 혼자 남은 나를 각자의 사랑으로 지켜내려 했던 그들이 떠올랐다.
내가 끝까지 나일 수 있게, 따뜻하면서도 서툰 사랑으로 키워준 내 친구들과 성당 언니 오빠들과 빠스카 친구들.
마음 속에 깊은 어둠을 품고 자꾸만 멈추려 했던 나를 돌아가며 지켜냈던 이들 덕에 나도 날아오를 수 있었다.
 
다른 존재들끼리의 진정한 애정.


p.117
"넌 갈매기란다. 그건 침팬지의 말이 옳아. 그러나 아포르뚜나다, 우리 고양이들은 모두 너를 사랑한단다. 너는 아주 예쁜 갈매기지. 그래서 우리는 너를 더욱 사랑한단다."

p.117
"네가 고양이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우리들 중 그 어느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지. 네가 우리처럼 되고 싶다는 말이 우리들을 신나게 했기 때문이야. 그러나 너는 우리와는 달라. 하지만 네가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이 우리를 기쁘게도 하지."

p.118
"우리들은 네가 알에서 부화되어 나올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너를 보호해왔단다. 우리들은 네게 많은 애정을 쏟으며 돌봐왔지. 그렇지만 너를 고양이처럼 만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단다. 우리들은 그냥 너를 사랑하는 거야. 네가 우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아. 우리들은 네 친구이자, 가족이야. 우리들은 너 때문에 많은 자부심을 가지게 됐고,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도 알아줬으면 좋겠구나. 우린 우리와는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아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지. 우리와 같은 존재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야. 하지만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인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그런데 너는 그것을 깨닫게 했어."

p.118
"너는 갈매기야. 그러니 갈매기들의 운명을 따라야지. 너는 하늘을 날아야 해. 아포르뚜나다, 네가 날 수 있을 때, 너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네가 우리에게 가지는 감정과 우리가 네게 가지는 애정이 더욱 깊고 아름다워질 거란다. 그것이 서로 다른 존재들끼리의 진정한 애정이지."

p.123 ~ p.124
""그래, 좋아요! 내게 나는 법을 가르쳐주세요!" 순간 고양이들은 너무 기뻐서 환호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들은 고양이 특유의 인내심을 발휘해서 어린 갈매기가 날고 싶다는 의지를 직접 드러낼 때까지 끈덕지게 기다렸던 것이다. 왜냐하면 난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에 달린 문제라는 것을 고양이들은 조상들이 일러준 교훈을 통해 이미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강요나 억지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