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食性 人間

나의 인생

하나 뿐인 마음 2025. 3. 23. 16:11

프란치스코 교황, 파비오 마르케세 라고나 지음. 윌북

 

프란치스코 교황님(할아버지)의 자서전이라니... 책이 나온다는 소식은 반갑지만 이번에는 입원 기간이 꽤 길었고 얼굴조차 볼 수 없었던 시간도 길었던 터라 슬프기도 했다. 기자인 파비오가 (아마도 자서전을 목표로) 인터뷰를 하고 그 내용 중간중간에 회고하는 형식으로 논픽션 이야기를 채워 넣었다. 가톨릭 신자들에게만 들려주는 자서전이 아니어서인지 교황님은 자신의 역사와 세계 역사를 거의 동일시하면서 몸소 겪은 세상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삶을 회고한다. 세계대전 등의 전쟁과 유대인 학살, 군사독재, 질병, 경제 위기, 생태 위기 등을 어떻게 겪었고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런 사건을 어떻게 통과해야 하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특유의 자상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교황직을 받아들인, 저택에서 나와 더 작은 곳에 머물며 수세기에 걸쳐 꾸며진 교황좌를 가볍고 간결하게 만든, 그래서 세상과 더 가까워지고 아래로 더 내려온 교황. 세상의 역사와 하느님과 자신의 역사를 나란히 놓을 줄 아는 교황님 덕에 교회는 믿는 이들을 위해 울타리를 부수고 문을 연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모든 이를 위해 울타리를 허물고 문을 연 채로 기도했다. 

 

세상 구석에서 벌어지는 억압이나 가난한 이들이 가장 먼저 겪는 생태의 위기와 가장 큰 폭력인 전쟁이 '우리들의 일'이라고 말해주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대를 위한 염려를 불러 일으키고, 잊혀지던 노년층을 드러내고, 교회의 죄를 세상 앞에서 고백하고 뉘우치며 때론 호되게 다그치던, 기도가 믿는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기도하는 모습으로 보여주었던 교황님. 오래도록 우리 곁에 계시기를 바라지만 이것마저도 맡겨드려야 하는 일이 아니겠나. 

 

교황님은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지금까지도 호되게 치르고 계시지만 알면 알수록, 이 책을 읽으면 더욱더, 너무나 우직하게 '기본'을 고수하는 분이라는 걸 알게 된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그러나 진지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이들은 모두 이 책을 한 번쯤 읽었으면 좋겠다. 

 

같은 시기에 함께 읽던 토마시 할리크 신부님의 책 <그리스도인의 오후>을 통해 '공공신학'에 관해 좀 더 생각하게 되었는데, 교황님의 삶 자체가 공공신학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부활절이 지나면 공공신학 책을 좀 읽어야겠다. <아시아 공공신학>(분도출판사)


p.55 ~ p.56
"우리는 사람들이 받고 있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물론, 재건에 참여하거나 보급품을 보내거나 자선 활동에 참여하는 식으로 기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기여는 이웃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마음속에서 내려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이며 우리 사이에 증오가 커져서는 안 됩니다. 전쟁이 진정으로 끝나려면 용서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의가 아닌 복수가 뒤따르게 됩니다!
우리는 평화의 문화를 구축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는 단지 전쟁에 뒤따르는 폭력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모든 폭력을 거부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을 파괴하는 뒷담화의 폭력을 생각해보세요. 자기방어를 할 없는 취약한 이들에게 가해지는 심리적 폭력을 생각해봅시다. 권력 남용으로 말미암은 폭력도 있지요. 그런 일은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말 평화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우리부터 노력해야 합니다. 바오로 성인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자비, 호의, 용서는 평화의 문화를 구축하는 최고의 약입니다."

p.124
"저는 그 정권 동안 주님께 많은 기도를 드렸는데, 무엇보다 폭력과 굴욕을 겪은 사람들에게 평화를 달라고 청했습니다. 독재는 악마 같은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제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그것은 한 세대를 대량으로 학살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제 동료 형제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몹시 불안했고,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p.167
"그 시기 제 마음의 등대가 되어주었던 것은 이냐시오 영성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주님께서 저를 시험하시고 제 마음을 더 잘 읽을 수 있도록 그 위기의 시기를 경험하게끔 하셨다고 확신합니다. 2년 동안 저는 저의 과거, 수 도원 생활, 본능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방식으로 내린 선택, 권위주의적인 태도로 저지른 실수들을 많이 생각했어요. 저는 권위주의적인 태도 때문에 극도로 보수적이라는 비 난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p.188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학살, 살인, 테러를 저지르거나 개인이나 국민 전체에 대한 박해를 정당화하는 것은 신성모독입니다. 악을 저지르고자 주님의 이름에 호소할 수는 없습니다. 성직자의 임무는 종교의 이름으로 증오를 정당화하려는 그 모든 시도를 비판하고 밝혀내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에 대한 이런 우상숭배적인 왜곡을 단죄하는 것입니다."

p.198
"자상함은 약자의 덕목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신의 강직함, 주의력, 동정심, 타인을 향한 진정한 개방 그리고 사랑하는 역량을 보여줍니다."

p.205 ~ p.206
"기업이나 시장의 자유에 대해 몇몇 사람이 가진 권리가 온 민족의 권리와 가난한 사람들의 존엄성보다 우선할 수 없습니다. · · · 우리는 신자유주의 신념이라는 것을 교리로 믿고 싶어 하지만 시장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p.206 ~ p.207
"인간과 환경 모두에 친화적인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기울여야 할 노력은 '시장을 문명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장이 효과적으로 부를 만들어내는 일뿐만 아니라 통합적인 인간 발전에 기여할 것을 요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구의 불평등과 착취가 체계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단결해야 합니다. 불평등과 착취는 오직 이윤만을 추구하는 체계의 산물로서, 중심부와 주변부의 격차를 증가시키는 원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도 회의에 참석해서 발언하고, 자기 몫의 빵을 가져 갈 수 있는 존엄한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은 복지주의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지, 정치와 사회 질서에서 타자의 위치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을 변화시키고 개혁해야 합니다."

p.209
"상대방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잠시 멈추어 상대방의 삶과 마음속에 머문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관심하게 지나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상대방의 삶에 무관심하고, 상대방이 말하고 싶어 하는 바에 관심이 없으며, 상대방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대답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p.229
"교회는 책상 위에서 고안되고 세워지는 기관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실재입니다. 교회는 다른 모든 생명체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 모습을 변화시키면서 살아갑니다. ··· 그러나 본질은 항상 동일하며 그 중심은 그리스도이십니다."

p.234
"교회가 자기중심적일 때 그 문제점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스스로 빛을 가지고 있다고 믿게 됩니다. 곧, 달의 신비 mysterium lunae(해를 비추는 달처럼 교회는 그 자체로 빛을 내는 존재가 아니라 빛이신 예수님을 비추기 위한 존재라는 뜻)이기를 멈추고 영적 세속성(드 뤼박에 따르면 교회가 일으킬 수 있는 최악의 악)이라는 심각한 악에 자리를 내어주게 됩니다. 자기들끼리 서로 영광을 주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두 가지 이미지가 있습니다. 스스로 밖으로 나가는 복음화하는 교회, 곧 하느님의 말씀([교회가] 종교적으로 듣고 충실히 선포하는 하느님의 말씀 Dei Verbum religiose audiens et fidenter Proclamans)의 교회. 아니면 자기 안에서, 자신에 대해서, 자신을 위해서만 사는 세속적인 교회. 이 두 이미지는 교회가 영혼 구원을 위해 어떤 변화와 개혁을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p.290 ~ p.291
"사는 법을 배우려면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 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장벽을 허물고, 갈등을 극복하며, 무관심과 증오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던 예수님처럼 굳어 있는 마음을 녹이고 변화시켜 이웃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게 됩니다. 이타적인 사랑만이 세상을 바꾸고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