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3,1-9 포도밭에 심어진 무화과나무처럼,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다해 사순 제3주일 레지오 훈화)
길가에서 자라는 나무에는 큰 가뭄이 들거나 병들지 않는 다음에야 굳이 애써서 물을 주거나 거름을 주지 않지만, 포도밭에 심긴 포도나무에는(애써 심고 키우는 나무이기에) 포도 재배인이 확을 파서 물을 대고 거름을 줍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무화과나무는 길가가 아니라 포도밭에 심어졌습니다. 즉, 포도밭에서 제때 물과 거름 등 재배인의 정성과 돌봄을 받은 나무인데 삼 년째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길가에 심어진 무화과나무일까요, 포도밭에 심어진 무화과나무일까요? 좁은 시선으로 나 자신만 생각하다가, 내가 살아온 지난 시간과 지금 내가 처한 환경을 돌아보며 생각해 보니, 포도 재배인의 정성과 돌봄에도 불구하고(때론 그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그저 가만히 자리만 잡은 채 열매 맺을 생각도 없이 살아온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도 나를 왜 덩그라니 낯선 포도밭에 심어놓고 외롭게 만드나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그러고보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포도밭에서 자라는 무화과나무의 삶이란 생각도 듭니다.
답답했던 포도밭 주인은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포도 재배인은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포도 재배인은 자신의 노력이 당장 결실을 보지 못해도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수고를 마다 않고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며 다시 희망을 겁니다. 현세의 포도밭 주인 역시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당장 잘라버리라고 하겠지만, 세상에서 포도밭을 일구고 가꾸며 살아가는 우리는 이 포도 재배인의 마음을 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포도나무도 무화과나무도...
포도밭에 심어진 무화과나무처럼, 우리도 때론 누군가의 정성과 돌봄을 알아보지 못하기도 하고, 내가 처한 환경의 소중함을 잊은 채로 무덤덤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도, 내가 받고 누린 정성과 돌봄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낯설고 외로운 것을 탓하며 원망을 품은 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는 물을 대고 거름을 주시면서, 포기한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를 대신해서 버텨주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사순시기에 나는 지금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요.
오늘 1독서에 나오는 떨기나무가 불꽃에 타고도 사그라지지 않은 이유는, 떨기나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불꽃이 특별해서, 즉 불꽃이 떨기를 감싸되 불살라버리지 않는 하느님의 현존이었기 때문입니다. 열매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가 계속 포도밭에서 자랄 수 있었던 것 역시 포도 재배인 덕이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불꽃에 타 없어지지 않는 떨기나무, 하느님의 포도밭에 심긴 무화과나무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빛 앞에서 우리의 삶을 잘 비추어보며 살아가는 한 주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 오늘은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해 거름을 주는 포도재배인을 한참 들여다 봤다. 가끔 검색하다가 만나는 Moyers의 그림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