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食性 人間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하나 뿐인 마음 2024. 11. 20. 11:53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은행나무.

 

환자 심리에 관한 강의에서 추천해 주신 책인데, 처음에는 어쩌다가 내가 이제서야 이걸 읽었을까 싶다가, 그때가 아니라 지금 읽는 것이 얼마나 더 다행인가 싶을 정도로 잘 읽었다 싶은 책. 

 

알랭 드 보통의 책도 오랜만이지만('뉴스의 시대' 이후 처음이다.), 뭐랄까 여태까지의 직관적이고도 단순 명료한 제목에 비해 이 제목은 어떤 식으로든 '낚지 않겠다(=속이지 않겠다)'가 느껴진달까. 읽고 나니, '낚지 않겠다'는 이 의도 가득한 제목은  그가 보여주고 싶은  결혼이라는(혹은 인생이라는) 현실에 있어 아주 중요한 주제였다. 

 

다리도 다친 상태라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마음이 이래저래 약해져 있는 상태라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다독일 필요까지 있던 때이기도 했는데, 독백축어록을 쓰면서 내 기억 속에 깊이 자리잡은 어릴 적의 장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데에 너무 큰 도움이 되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꼭 필요한 때에 그 기억을 다시 떠올렸고, 처량하게 혼자 앉아 있던 아이를 한껏 안아준 후에 손잡고 다시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아이를 안아서 번쩍 들어올리니 그 아이는 쪼그리고 앉았을 때에 볼 수 없었던 주위 광경을 천천히, 어쩌면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오랜 만에 선물처럼 찾아온 오랜 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마음이 전이에 말려들면 우리는 사람이나 상황을 믿어주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불안에 빠져 즉시 과거가 지정해놓은 최악의 결론으로 나아간다. 감정을 기점으로 송환하는 일은 사랑의 가장 섬세하고도 필요한 과제다. 전이의 위험성을 인정하면 짜증과 비난보다 공감과 이해에 우선순위를 두게 된다. 두 사람은 갑자기 폭발하는 불안이나 적대감이 항상 그들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그러니 그런 폭발에 매번 분노나 상처받은 자존심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된다. 격분과 비난이 동정심에게 자리를 내줄 수 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우리는 정말로 책임이 있는 권력자에게 소리를 내지를 수가 없기에 우리가 비난을 해도 가장 너그럽게 보아주리라 확신하는 사람에게 화를 낸다. 주변에 있는 가장 다정하고, 가장 동정 어리고, 가장 충성스러운 사람, 즉 우리를 해칠 가능성이 가장 적으면서도 우리가 마구 소리를 치는 동안에도 우리 곁에 머물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에게 불만을 쏟아놓는 것이다."

"아이는 어른에게 사랑의 다른 측면을 가르쳐준다. 진정한 사랑은 까다롭고 불쾌한 행동 이면에 놓여 있을지 모르는 무언가를 최대한 관대하게 해석하려는 끊임없는 시도를 수반한다는 점이다.
부모는 울음, 발길질, 슬픔, 화가 진정 무엇 때문인지를 짐작해야 한다. 이 해석 활동의 두드러진 특징이자 평범한 성인들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해석 양상과 확연히 차별되는 점은 자애심이다. 부모는 아이가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괴로워하고 아파할 수는 있겠지만, 단지 아이를 찌르고 있는 핀을 확인하고 제거해주면 아이는 즉시 타고난 천진함을 회복할 것이라고. 아이가 울 때 우리는 아이가 심술궂거나 자기 연민에 빠졌다고 비난하지 않고, 무엇이 불편하게 만드는지를 생각한다. 아이가 깨물 때 우리는 아이가 틀림없이 겁을 먹었거나 순간적으로 골이 났을 거라 생각한다. 또한 배고픔, 소화 장애, 수면 부족이 기분에 서서히 미칠 수 있는 영향도 잘 알아본다.
만일 이 본능을 성인들의 관계에 조금이라도 도입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친절한 사람이 되겠는가? 그렇다면 성인들의 관계에서도 심술궂음과 잔인함을 보아 넘기고 거의 항상 그 이면에 깔려 있는 두려움, 혼란, 피로를 감지해낼 수 있다. 인류를 사랑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이런 의미일 것이다."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란 쉽지 않은 선례다. 본질상 부모의 사랑은 그 사랑을 베풀기 위해 쏟은 노력을 감추는 작용을 한다. 부모의 사랑은 받는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의 복잡한 사정과 슬픔을 감추고, 부모가 사랑의 이름으로 다른 이익, 친구, 관심사를 얼마나 많이 희생했는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부모의 사랑은 무한한 너그러움으로 이 작은 존재를 한동안 우주의 중심에 놓는다. 부모의 사랑이 그토록 강한 것은 아이가 괴롭고 두려운 심정으로 어른 세계의 진짜 척도와 불편한 고독을 이해해야 할 그날을 위해서다."

"다소 온화한 편인 그들의 기질은 수십 년 동안 겪은 크고 작은 실망의 유산이고, 그들의 인내하는 사고방식은 강물이 깊은 협곡을 만들듯 그들에게 어려움을 안겨준 수많은 사건에 깎이고 다듬어진 결과다."

"우리 눈에 정상으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아직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뿐이 다. 사랑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어떤 관계도 온 마음을 다해 친밀하고자 하는 헌신 없이는 첫걸음을 떼지 못한다."

"여러 해가 지나고 또 여러 편의 사랑에 관한 에세이를 접한 후에야 라비는 몇몇 다른 결론에 도달하고, 한때 그가 낭만이라 보았던 것-무언의 직관, 순간적인 갈망, 영혼의 짝에 대한 믿음-이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배워가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을 유발했던 신비한 열정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음을, 유효한 관계를 위해서는 그 관계에 처음 빠져들게 한 감정들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이제 그는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어느 정도 자제하고 자기 편집에 조금 열성을 보이는 것으로서의 억제는 솔직한 고백 능력 못지않게 당연히 사랑에 포함된다. 스스로 비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 '정직함'을 내세워 상대방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상처가 되는 정보까지 털어놓는 사람은 절대 사랑의 편이 아니다. 또한 파트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한 일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간밤에 어디에 있었는지 등등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는 의심이 들어도(우리의 관계가 훌륭하다면 주기적으로 그럴 것이다), 날카롭고 무자비한 심문자처럼 굴지 않는 편이 좋다. 그저 눈치채지 못한 척하는 편이 더 친절하고 더 현명하고 사랑의 참된 정신에 더 가까울 수 있다."

"회피 애착 유형은 정서적 필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갈등을 피하고 상대방에게 노출을 줄이려는 강한 욕구를 느낀다는 특징이 있다. 회피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열심히 공격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설득은 전혀 먹히지 않는다고 쉽게 가정한다. 자리를 피해 도개교를 올리고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유감스럽게도 회피적인 사람은 두려움에 찬 방어적인 행동 양식을 파트너에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 결과 그들의 소원하고 무덤덤한 행동들 뒤에 숨어 있는 이유들은 안개 속에 싸인 채 진실과는 정반대로 무정하고 무심하다는 오해를 쉽게 불러일으킨다. 회피적인 사람은 사랑을 주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느끼게 되었을 뿐, 마음속으로는 상대방을 깊이 염려한다."

"라비와 아주 유사하게 커스틴도 실망 했을 때 그녀 자신이 사랑받기를 절실히 원하는 사람에게서 공감을 이끌어내기 힘든 방식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습관이 있다."

"이 세상에 항상 나쁘기만 한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스스로도 고통스럽다. 그러므로 적절한 대응은 냉소나 공격이 아니라, 드문 순간이나마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사랑해주는 것뿐이다."

"당신이 바라는 모든 일을 하거나 당신이 바라는 모든 존재가 되진 못할 거야. 당신도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우리가 자신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를 서로 용기 있게 얘기하는 그런 사람들이 될 수는 있다고 믿고 싶어. 그렇지 않으면 침묵과 거짓말인데, 그건 사랑의 진짜 적이잖아."

"그는 또한 자신에게 타인의 자애심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깨닫고서 관대해질 태세를 더욱더 잘 갖춘다. 남들은 원한을 품을 때 그는 상황을 고려하는 쪽에, 그리고 사악하고 나쁜 행동들에 드리운 일말의 덜 도덕적인 진실들에 더 관심을 보인다. 냉소는 너무 쉽고, 그래서 얻는 것이 없다."

"연인의 이해 능력에는 적정 한계가 있고, 우리
는 언젠가 그 한계에 부딪힌다 하더라도 직무유기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애석하도록 무능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헤아릴 수 없으며,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게 정상이다. 어떤 사람도 다른 누군가를 정확히 이해하고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다."

"잘 들어주는 사람은 의사 전달을 잘하는 사람 못지않게 드물거나 중요하다. 잘 들어주는 사람 역시 특별한 자신감이 그 비결이다. 어떤 확고한 가정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는 정보로 인해 경로를 이탈하거나 그 무게에 무너져 내리지 않을 수 있는 수용력 말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라면 마음속에 얼마간 담아둘 혼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미 경험을 통해 모든 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미쳤다는 생각은 철저히 직관에 반한다. 우리는 자신이 지극히 정상이고 대체로 선량하다고 생각한다. 발을 못 맞추는 건 나머지 사람들이라고· · · · · ·. 그렇지만 성숙은 자신의 광기를 감지하고, 적절한 때에 변명하지 않고 인정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만일 수시로 자신이란 사람에 대해 당황스러워지지 않는다면 자기 이해를 향한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은 것이다."

"토라짐의 핵심에는 강렬한 분노와 분노의 이유를 소통하지 않으려는 똑같이 강렬한 욕구가 혼재해 있다. 토라진 사람은 상대방의 이해를 강하게 원하면서도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설명을 해야 할 필요 자체가 모욕의 핵심이다. 만일 파트너가 설명을 요구하면, 그는 설명을 들을 자격이 없다. 덧붙이자면, 토라짐의 대상자는 일종의 특권을 가진다. 다시 말해, 토라진 사람은 우리가 그들이 입 밖에 내지 않은 상처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를 존중하고 신뢰한다. 토라짐은 사랑의 기묘한 선물 중 하나다."

"성인이 되었을 때 우리는 보살핌을 받고 다 받아들여지던 그 느낌을 되살리고 싶어 한다. 우리는 마음속 은밀한 구석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예측하고, 우리의 심정을 읽어내고,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모든 면에서 더 나아지게 해줄 연인을 그린다. 이건 '낭만적'인 것 같 지만, 재난의 예고이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라비는 일부 오해에 대해 체념하고, 용기가 없어 설명하지 못한 성격상의 특징들을 받아들이지 않은 아내를 무의식적으로 탓한다. 한편 커스틴도 남편의 성적 생각에서 그녀의 역할이 배제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감히 묻지 못하는 선에서 안주한다. 또한 왜 더 자세히 알아보기 두려운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현재 시나리오의 일부는 다른 원천으로부터 동력을 얻은 듯하고, 특정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오래전에 형성된 행동 양식이 잠재의식 속에서 다시 떠올라 본인도 모르게 나타나는 듯하다. 심리학 용어로 말하자면, 과민 반응을 하는 사람은 과거의 감정을 현재의 누군가-전 혀 당해 마땅하지 않은 사람-에게 '전이' 시키는 것이다.
묘하게도 우리의 마음은 자신이 어느 시대에 속해 있는지를 인식하는 일에 늘 능통하지는 않다. 과거에 강도를 당한 사람이 침대 곁에 총을 두고 자다가 바스락 소리만 나도 깜짝 놀라 깨는 것처럼, 마음은 다소 쉽게 비약을 한다. 곁에 있는 연인에게 더욱 안 좋은 소식은 한창 전이에 빠진 사람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차분히 설명하는 것은 고사하고 쉽게 깨닫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반응이 상황에 완전히 적절하다고 느낄 뿐이다. 반면에 그들의 파트너는 상당히 다르고 별로 기분 좋지 않은 결론, 상대가 유난히 이상하고 어쩌면 약간 미쳤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가 있다."

"운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의 강인함, 결국 눈물을 멈출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녀에 겐 작은 슬픔이라도 느끼는 것 자체가 사치다. 그녀는 다 부서지고 나면 다시 조각들을 어떻게 짜 맞추어야 할지 영영 모를 수도 있다는 위험에 처해 있다. 그럴 가능성을 막기 위해 일곱 살의 어린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상처를 마비시킨다."

"우리는 의식에서 거의 지워져버린 위기들이 오래전에 만들어놓은 대본에 따라 행동할 때가 너무나 많다. 지금은 기억에서 사라져 폐물이 된 논리에 따르고, 우리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밝히지 못할 의미를 좇는다. 우리는 우리가 진정 인생의 어느 시기에 있고, 정확히 어떤 사람을 상대하고 있으며, 앞에 있는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곁에 두기에 약간 고달픈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