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영적 독서(생활성서 기고 10월)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어릴 적에 한 달에 한 번 아버지와 함께 둘이서만 외출을 했습니다. 아마도 글을 읽기 시작할 즈음, 어쩌면 글이라기보다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알아보기 시작할 무렵부터였을 것입니다. 용돈도 없고 문구도, 책도, 장난감도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아버지께서는 우체국에 저를 데리고 가시기 위해 우체국 옆 토마스 성당 1층에 있던 성바오로 서원에 들러 책을 한 권씩 사주기로 약속하셨던 겁니다. 그 특별하고도 귀한 선물을 받기 위해 매달 아버지를 따라나섰습니다.
어린이였던 저는 『티코와 황금날개』(레오 리오니)를 펼칠 때마다 황금 깃털을 내어주며 살아가는 삶을 꿈꾸었고, 꽃봉오리 속에서 태어난 『엄지공주』(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만화책은 책이 닳도록 읽었습니다. 어려운 일들이 예기치 않게 찾아올 수도 있다는 걸 엄지공주가 알려주었지요. 그림이 너무 예뻐서 집어 들었던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폴러스)은 지금까지도 꺼내보는 책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우리 모두 죽지 않고 다 변화할 것입니다.’(1코린 15,51)라는 말씀이 무엇인지 어쩌면 『꽃들에게 희망을』을 읽던 그때부터 희미하게 알아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시절 재미있게 읽은 책으로는 어린이용 성경동화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고래 배 속에 망연자실 앉아있던 요나 예언자의 표정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후에 되찾은 환한 웃음을 어린이는 놓칠 수 없으니까요.
아버지와 함께 서점을 갈 수 없게 된 후에도 저는 혼자서 성바오로 서점에 들르곤 했습니다. 사춘기를 지날 때 읽었던 『천국의 열쇠』(A.J.크로닌)는 신앙생활을 계속해 나갈 힘을 주었고, 사목에 있어서도 백지 상태요 인생에 있어서도 겨우 몇 줄 메워나간 삶을 들고 인디언 마을을 찾아간 마크 신부의 이야기인 『부엉이가 내 이름을 불렀네』(M. 크레이븐)는 파견된 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선교의 삶을 제 마음에 씨앗처럼 뿌렸을 것입니다. 교리교사를 하던 시절에 눈물 펑펑 쏟아가며 『몰로카이섬의 다미안 신부』(손옥희)를 읽던 저는 수련소 시절 수녀원 도서관 귀퉁이에 기대어 다시 그 책을 펼치며 하느님이 보내시는 곳에서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에게 나를 오롯이 봉헌할 마음을 다지기도 했습니다. 대학생 때 읽었던 『침묵』(엔도 슈사쿠), 『칠층산』(토마스 머튼)도 잊을 수 없습니다. 홀로 힘든 시기를 지나며 고통의 의미를 찾고 싶었던 저는 『주여, 왜』(카를로 카레토)를 읽었는데 카레토 신부님의 글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아 『사막에서의 편지』(카를로 카레토)마저 찾아 읽은 후 “나와 함께 사막으로 가자. 너의 활동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건 기도다. 네가 하는 말보다 더 강력한 것이 있다. 그건 사랑이다.”하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울려 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르띠니 추기경님의 『모세의 생애』(C.M. 마르띠니)를 읽을 즈음엔 예수님의 그 목소리가 더욱 커져 내 안에서 반향을 일으키며 맴돌았고 결국 내 삶 안에 사막을 마련하기 위해 입회를 결심했습니다. 첫서원을 한 후 읽었던 『깨어나십시오』(앤소니 드 멜로)와 『깊이에의 강요』(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성(聖)과 속(俗)의 균형을 맞추어주었다고나 할까요.
제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다정한 책은 단연 『안젤로』(데이비드 맥컬레이)입니다. 할 수 없이 새 둘레를 치웠던 안젤로의 “할 수 없군.”으로 시작된 세상 가장 다정한 동행 이야기인데요, 누군가에게 다정하게 위로받고 싶은 순간이 올 때 이 그림책을 떠올립니다. 티격태격하는 세 마리의 펭귄과 부산하면서도 열심이고 솔직한 비둘기 덕에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화를 내는 것도 하나의 솔직한 기도임을, 지금의 내 사랑이 억지로 하는 사랑인지 마음에서 우러나온 사랑인지를 돌아보게 하는 『8시에 만나!』(울리히 흄)는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특히 첫영성체를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꼭 선물하고 싶은 책입니다. 마음이 자꾸만 움츠러들 때는 『아니의 호수』(키티 크라우더)를 펼치고 내 곁에 언제나 있었던 거대한 세 명의 거인을 확인하고 고립에서 벗어나 다시 길을 떠날 용기를 얻곤 합니다.
무엇보다 베네딕도회 수도자인 제가 가장 많이, 자주 읽는 책은 당연히 성경입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규칙서에서 수도승의 하루를 바큇살처럼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순서대로 세워둔 후 나머지 시간을 채워나가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하게 시간을 차지하는 일이 '육체노동'과 '성독(聖讀)'입니다. 교회와 세상을 위해 공적으로 바치는 시간 전례가 바퀴가 돌듯 꾸준히 돌아가고, 개인적 기도라 할 수 있는 성독과 육체노동으로 균형을 맞추는 것입니다. 이를 설명하는 규칙서 48장에는 'vacare'라는 단어가 6번 나오는데 무언가를 위해 '비워두다' 혹은 어떤 일에 '몰두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성독을 하기 위해 하루에 반드시 비워두어야 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그 어느 때보다 전념해야 하는 시간이 바로 '성독'이라는 것을 베네딕도 성인은 규칙으로 삼아서라도 제자들에게 강조하고 싶으셨나 봅니다. 사부님의 제자인 저에게도 성독은 매일의 시간 중 반드시 비워두어야 하는 시간, 그리고 내 온몸과 마음으로 채워야(몰두해야)하는 시간입니다. 성독은 제가 하느님을 통해 세상을 보게 하고, 책 읽기는 세상 속에서 다시 하느님을 발견하도록 이끌어줍니다. 이렇게 성경과 더불어 책 읽기가 저의 영적 삶을 키우고 살찌웁니다. 덕분에 어릴 적 아버지 손을 잡고 서점을 찾던 아이는 잘 자라나 여전히 책을 좋아하는 수도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