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메시지
이성우 지음. 가톨릭출판사.
성경이야 세기를 거듭해도 의미가 있지만, 연구 해석하는 사조는 변하기 나름. '너무 나갔다' 싶은 해석도 있었으나 심리학을 바탕으로 성경 인물들을 연구 분석하던 시대였음을 감안하고 읽으면 큰 무리는 없다. 오히려 성경의 여성 인물을 어떻게든 재조명하고 세상에 등장시키려는 노력이 고마웠다. 다만, (지금도 그렇지만) 여성의 눈으로 여성을 보는 것과 남성의 눈으로 여성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지를 확인시켜 주는 것 또한 이 책의 순기능이라면 순기능이고 아쉬운 점이라면 또한 아쉬운 점이다. 이제와서 굳이 사서 읽어볼 책은 아니고, 여기서 더 나아가는 책들이 계속 나오고 있으니 (이 책도 이러한 흐름에 길을 낸 책이기에 감사하다.) 우리는 그 흐름을 더 크게 만들어야겠지.
p.40 ~ p.41
"라합의 참모습은 이름 자체가 말해 주듯이 ‘넓은 사람’이다. 라합은 예리고에 살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멀리 보는 눈과 넓은 가슴을 가진 여인이다. 언뜻 보기에 계산된 이기심의 소유자로 보이지만, 실제로 라합이 그녀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들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감동적이다. 예리고에 살고 있는 온 지파의 운명이 라합의 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p.50 ~ p.51
"룻기는 다말의 아들 베레스에서 이새와 다윗까지 이어지는 작은 계보를 전한다(룻 4, 18-21). 이 계보에 살몬이라는 이름이 언급되는데, 살몬은 나흐손의 아들로서 다윗의 증조부이자 롯의 남편인 보아즈의 아버지가 된다.
마태오 복음 사가는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기까지 어떤 조상들이 혈통을 이어왔는지를 증거하는 기록에서 바로 이 살몬을 여호수아의 두 정탐원 중 한 사람과 동일시하고, 예리고의 창녀, 라합을 보아즈의 어 머니라고 설명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이야기 전승 가운데 부차적으로 보이는 에피소드가 갑자기 세상 구원을 결정 짓는 중대한 이야기로 부상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여호수아서에 전해지는 이야기에서는 - 이름이 없던 간첩도 이름을 얻게 되었다. 최소한 두 명 중 한 사람이 익명의 그늘에서 나와 라합의 남편으로 밝혀진다. 살몬은 바로 앞에서 모세가 세운 율법(신명 7, 1-11 참조: 가나안 민족을 전멸하라는 계명)을 뛰어넘은 첫번째 인물이다. 그는 가나안 여인 라합과 결혼하여, 그녀와 자기의 자녀들을 책임졌으며, 창녀와 함께 예리고에서 살았다. 그리고 하느님은 이 결합을, 모세의 율법에 위반된 이스라엘 사 람과 가나안 여인의 결합을 축복하셨다."
p.104
"이것은 다윗의 용감한, 어떤 의미에서는 인류 역사에 처음 있는 결심이다. 다윗의 생각은 이렇다. "죄를 보속하는 최선의 방식은 행복을 무참히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했지만 행복을 택하는 것이다. 이미 저지른 잘못에 대한 보상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열심히 사는 것이다.""
p.139
"이 죽음과 재생의 시련 내지 갈등을 겪지 않고 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는 아이는 아무도 없다. '부모가 자녀를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자녀가 사춘기가 되어 자기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자기 주 장을 하게 되면, 부모는 이런 자녀를 '하느님께 봉헌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하여 부모의 생각대로 만들려는 의향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자녀 안에는 이미 하느님의 영이 살아 계시고, 그 영이 자녀를 이끌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생각보다는 하느님의 영이 훨씬 더 지혜롭지 않은가? 그래야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행복하고 활력 있는, 자유로운 삶이 열리고, 자녀가 아름답고 강하게 성숙할 수 있다."
p.141
"이 세상에는 물론 여러 가지 위험이 있다. 그러나 위험이 전혀 없는 삶은 곧 죽음이다. 이 세상 삶이 전부라면 사랑은 숨을 쉴 수 없다. 사랑은 자유를 먹고 산다. 사랑은 영원을 믿을 때 가능하다. 사랑은 상대가 자기답게 삶을 활 짝 펼치고, 풍요롭고 다양한 삶을 시도할 수 있도록 자유와 용기를 주는 것이다. 상처받고 다치고 쓰러질까봐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사랑에서 나오는 두려움이다. 사랑과 두려움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그러나 두려움은 죽이고 사랑은 살린다. 사랑할수록 상대를 자유롭게 놓아 두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가 성숙할 수 있도록 내보낸다. 자기 울타리 안에서는 훨훨 나는 새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세상으로 내보낸다."
p.157
"이 모순을 잘 이해해야 한다. 자녀나 학생에 대한 관심과 사랑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편적인 생각이다. 관심과 사랑은 자체 내에 어두운 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p.158 ~ p.159
"자녀나 청소년들의 길을 막는 것은, 어른들의 '악의'가 결코 아니라, '불안에 찬 사랑‘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자녀나 제자들에게 특히 관심이 많고,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어른들이나 선생님들이 그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너희 잘 되라고, 너희를 위해서 하는 말이다. 너희 못 되라고, 아니면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청소년들의 귀에 이 말보다 더 난해하고 모순된 말은 없다. 다시 말해서 전혀 이해 되지 않는 말이다. 청소년들이 이해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런 말을 하는 어른들이나 선생님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잘 되라고 꾸중하고 억압하고 벌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효과의 측면 때문이 아니라, 그런 말과 행위의 진정한 원천이 걱정과 불안이라는 것 때문에 옳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