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_답지 않은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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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수 글. 부키.
MZ 세대에 관한 MZ 세대의 목소리. 초반에는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내용이어서 잠시 멈출까 고민했었는데, 읽을수록 읽고 싶어졌다. 뒤로 갈수록 내가 sns에서 보는 멋진 트친들 모습이 보였다. 나이가 보이지 않았을 때 가질 수 있었던 관계가 생각났고, 우리가 배울 점도 나눌 점도 얼마나 많은지 기억났다. 읽기를 참 잘했구나 싶고, 모임 가는 날 본원 도서관에 기증해야겠다.
살아가면서 조금씩 이해하기가 어려워지고 내 편에서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읽어본 책들은 대부분 윗세대가 관찰하고 터득한(했다고 생각한) 이야기들이었다. 의도하진 않았다 해도 ‘판단’이 포함된 책이었고 알려주려는 의도에 비해 ‘가르치는’ 책이었다는 걸 이 책을 보면서 또 알아간다.
p.35
"누군가는 요새 열광하는 갬성이 “알맹이는 다 똑같은데 포장만 번지르르한 것”이라며 비웃는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포장만 다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포장이 다른 것은 ‘실제로 다른’ 것이다. 재미와 의미를 굳이 어렵고 복잡한 데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그 색다른 콘셉트가 바로 재미와 독특함을 뿜어내는 핵심이다."
p.87
"A가 그동안 다니던 직장들을 그만둔 것은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는 본인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최선의 성과를 얻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마침내 자기만의 일을 하겠다며 낮과 밤, 평일과 주말의 경계도 없는 삶에 뛰어든 것이다."
p.123
"아버지가 “너 그러다 소탐대실할 수 있다”고 충고할 때마다 내 동생도 “그렇게 어렵거나 힘든 것도 아닌데 놓치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라고 받아치곤 한다."
p.168
"지금의 사람들은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혐오한다. 그리고 혐오를 합리화한다. 그 점이 가장 무섭다. “기만보다는 솔직한 것이 낫다” “앞에선 잘해 주다가 뒤에선 욕하는 것보단 차라리 앞에서 욕하는 것이 덜 위선적이다” “스스로를 욕하는 ‘셀프 디스’가 쿨한 것이듯, 남을 ‘공개 저격’하는 것도 과감하고 용기 있는 것이다” “저 사람/저 집단을 싫어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나는 당당하다”처럼 혐오를 합리화하는 수많은 명분 한가운데에는 ‘혐오는 솔직한 것’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리고 있다. 절대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가 혐오 표현을 쓰고, 거기에 동조하는 것을 본다면, 다음 단계는 혐오 표현을 써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혐오 표현을 쓰는 게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이어진다."
p.170
"혐오는 무지와 무관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성이, 남성이, 애들이, 노인이, 성소수자가, 중국인이 어쩐지 싫고 불편하지만, 그들이 왜 그런지를 알아보거나 이해하려고 하는 대신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엔 ‘나는 그들보다 낫다’는 우월감이 깔려 있다."
p.171 ~ p.172
"혐오와 비관, 부정은 전염력이 강하다. 날마다 복제되는 새로운 혐오는 이미 MZ를 너무 많이 갈라놓았다. 그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넘쳐나는 혐오를 스펀지처럼 빨이들이며 날마다 서로를 조금씩 더 싫어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이 나는 아깝다. 상대방을 좀 더 확실하게 싫어하기 위한 멸칭들을 만들어 내고 “입에 착불”이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나는 그들과 다르고 그들은 나보다 못났다, 못난 걸 못났다고 말하는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확실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p.209
"그들은 습관적으로 나를 사람보다는 ‘어린 사람’으로 대했다. 의도적으로 날 무시한다거나 낮잡아 보는 것 같진 않았지만 사적인 대화에서 그들이 건네는 언어의 99퍼센트에서는 분명히 나이에 대한 의식이 느껴졌다. 그들은 늘 자신의 욕망을 꺼내 놓았다."
p.210
"그 나이 타령이 나는 너무 지겨웠다. 정확히 어떤 부분이 짜증스러운지 콕 짚어 내긴 어려웠다. 다만 그들도 그들 나름의 편안함이 있을 것이고, 내게도 내 나름의 고통이 있다는 점은 언제나 지워지고 뭉개졌다는 점에 피로감을 느꼈다. 하지만 자신의 나이 듦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에게 짜증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별수 없었다.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p.220
"만일 우리의 언어와 생각에서 ‘답게’를 조금만 덜어 내본다면 어떨까. 한 명의 개인을 어떤 ‘나이’의 사람이나 어떤 ‘세대’의 일원으로 규정하고 짐작하기보다 ‘그냥 한 사람’으로 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MZ 세대에게 “MZ라서 역시······”라고 말을 시작하기보다는, “20대 젊은이”라고 부르기보다는, 000이라는 한 명의 사람으로, 그냥 그렇게 봐주면 안 될까?"
p.221
"한 사람을 ‘마음대로 추측’하고 ‘빠르게 이해했다’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오히려 그만큼 그 사람과 더 멀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 앞에 있는 한 명의 MZ는 아마 당신이 알고 있는 누군가와 비슷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 누구와도 다른 사람일 것이다. ‘요즘 젊은 애들은 그렇다’는 색안경과 ‘요즘 젊은 애들답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차츰차츰 알아 가 주었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무언가에 열정을 가진, 한 명의 특별하고 젊은 사람의 세계를."
p.259
"요즘은 사람들이 행복도 코딩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 무언가 인풋을 하면 아웃풋ㅇ으로 행복이 나와야만 의미가 있다고 보는 거야. 예를 들어 결혼을 입력하면 행복이 출력돼야 하고, 다른 게 나올 것 같으면 아예 결혼이라는 걸 입력하지 않는 추세인 거지. 근데 포괄적으로 생각했을 때, 삶이라는 것엔 고통도 있어야 한다고 봐. 자기 자신을 정확하고 깊게 하는 게 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 "
p.264
"“세상일이 ‘아’ 다르고 ‘어’ 다르잖아. 사실 우리는 정답에 근거해서 사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가 믿는 대로 살아. 그래서 더더욱 누군가의 주장을 가지고 서로를 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런 노력을 안하다 보니 요새 들어 더더욱 혐오가 많아진 것 같기도 해. 인간관계도 쉽게 손절을 많이 하잖아.”"
p.265
"사람은 긍정적인 부분보다 부정적인 부분에 감정이 더 쉽게 감정이 쏠려. 그게 편한 거야. 하지만 각자를 서사가 있는 개인으로 볼 수 있도록 시선을 열어 놔야 한다고 생각해. 혐오나 차별은 내가 손절하고 선 긋는 데서 시작하는 거잖아. 어떤 사람이 나에게 실수를 해도, 우선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질문해야지. 판단부터 해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
p.266
"자기 자신을 공부하는 건, 나라는 사람을 존중하고 관심을 둔다는 건, 내 속 밑바닥까지 가려고 노력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존중하기 때문에 시간을 들이는 거잖아. 그건 이기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한테 더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라고 봐."
p.266
"윗세대분들 중에 과도하고 쓸데없는 책임감을 가지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상대방을 다 안다는 듯이 대하고, 상대방이 원치 않는 배려를 하려 하지. 공동체를 강조하다 보니, 개개인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한 모습들, 조심성이 없는 것······. 그분들은 오히려 진짜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