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의 우물/마르코 10장

마르 10,2-16 마음에 품고 있는 '진짜 이유' (나해 연중 제27주일 레지오 훈화)

하나 뿐인 마음 2024. 9. 22. 10:27

"아무리 우아한 칼집에 꽂는다 해도 칼은 칼이다." 가끔 생각해보는 문장입니다. 제 아무리 우아하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칼집이라 해도 그 안에 품고 있는 것은 칼인 법이지요. 아무리 부드러운 표현 안에 감추었다 해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위해 꺼낸 말이라면,  아무리 정중한 표현 안에 감추었다 해도 남을 깎아 내리기 위해 꺼낸 말이라면, 아무리 근심 어린 표현 안에 감추었다 해도 염려가 아니라 의심이라면, 아무리 순박한 표현 안에 감추었다 해도 다른 의도를 품고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말이라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은 드러난 말이 아니라 숨겨진 진심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하는 이유는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그렇게 기록한 '이유'를 알려줍니다. 껍데기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시는 거지요. 하지만 제자들의 같은 질문에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하십니다. 이유를 설명할 ㅑ필요 없이 '답'을 말씀해 주신 겁니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마르 10,5)

모세가 이혼장을 써 주라고 한 것은 이혼을 장려하기 위해서나 혼인의 가치를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 역시, 하느님의 말씀을 이제 와서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랑에 있어 무책임하고 일시적이며 일방적이고 파괴적인 이들로부터 그 상대방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물건처럼 취급되며 사고 팔렸던 여인들에게, 변덕을 부리는 남편들의 하찮은 이유로 물건보다 못하게 버려졌던 여인들에게 살아갈 길을 터주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자칫 생명의 가치와 가정과 사랑의 소중함이 경시되기 쉬운 이 시대에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지키고 마음이 완고한 자들로부터 생명 사랑 가정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또 다른 무언가가 무엇일지 교회는 앞장서서 찾아내어 알리고 실천해야 합니다.

살면서 '이유'를 눈치 채게 되어 힘들 때가 많습니다. 숨은 의도는 숨겨졌기에 진실보다는 '거짓'을 가져옵니다. 들키고 싶지 않은 의도를 가지고 말을 하거나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타인의 속셈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나 자신의 속셈과 마주하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나 자신 앞에서 투명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멈추어 서서 나를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가감 없이 보여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용기 있게 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 각자가 마음에 품고 있는 '진짜 이유'를 늘 살피며 주님께 마음을 열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