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참여는 그리스도인의 의무 -교회의 정치 참여에 대하여 4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다시 이르셨다.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 것이나 청하여라." 아하즈는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야 7,10-14)
복음서에서 성 요셉은 의로운 분이셨습니다.(마태 1,18-24) 성모님께서 아이를 가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남몰래 파혼하려고 마음먹습니다. 그런데 꿈에 천사의 말을 듣고,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구나 하고 깨닫고 나시니까 자신의 결정을 바꿉니다. 아무리 옳아보여도 내 신념보다 하느님 말씀이 우선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사야 예언서에 나오는 아하즈 임금은 그 반대입니다. 하느님의 표징을 청하라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에 대해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이사 7,12)하고 말합니다. 언뜻 들으면 겸손한 말 같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이 내 신념과 다른 것 일까봐 거부하는 겁니다. 내 맘대로 살고 내 맘대로 내 나라 다스리게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개입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사야 예언자는 엄청난 예언을 하지요. “네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이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임마누엘)!”
ⓒ한상봉 기자 |
그렇다면, 오늘날의 시대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은 무엇일까요? 성 요셉처럼 내 신념을 꺾고 따라야 하는 하느님의 뜻은 과연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교황님을 통해 말씀하고 계시지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시기 직전에 추기경단 회의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신 안에서, 자신에 의해,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세속적 교회가 되지 말고, 자신으로부터 나와 (세상을 향하는) 복음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요. 이 추기경 회의 직후에 성령께서 추기경님들의 투표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하시는 성령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교황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정말 잘 들어야 합니다. 내 신념과 다르면 내 신념을 깨뜨리고 그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교황님께서는 2013년 6월 7일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치가 너무나 더럽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왜 정치가 더러울까? 왜 그리스도교인들이 복음의 영으로 정치에 참여하지 않을까?”,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정치는 공동선을 추구하기 때문에, 가장 뛰어난 자선의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공동선이라는 말에 대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 74항은 “개인과 가정과 단체가 더 완전하게 더 쉽게 자기 완성에 도달할 수 있는, 사회 생활의 모든 조건들의 총체를 내포한다.”라고 말합니다.
교황님은 정치가 가장 뛰어난 자선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왜일까요? 교회는 사회복지 사업에 앞장서야 합니다. 최후의 심판 때에 우리가 이 말씀을 듣도록 살아야지요: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35-36).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에게 국가의 사회복지 예산을 얼마나 줄지 누가 결정하나요? 정치가 결정합니다. 병들었을 때에 병원에 가야 하는데, 병원비는 누가 결정하나요? 의료보험제도이고, 이 보험제도는 정치가 결정합니다. 우리가 소득에서 얼마간 내는 사회복지 2차 헌금하고는 차원이 다른 액수예요. 그러니까 정치가 가장 뛰어난 자선이지요.
김유정 신부 (대전가톨릭대 교수)